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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집터

희망연속 2024. 5. 19. 13:31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3번 출구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00m를 걸어 올라가면 전통 혼례식장으로 유명한 한국의 집이 있습니다.
 
한국의 집 입구에 눈에 띠는 표지석, 바로 사육신의 한사람인 '박팽년 집 터'
 
알고 보니 한국의 집이 사육신 박팽년의 집이었던 것이죠.
 
박팽년은 원래 충청도 회덕현(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출신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곳의 이름이 회덕 분기점인데 아마 그 근처인 모양입니다.
 
박팽년은 과거에 합격헤서 서울로 올라와 집현전의 학사가 되었는데 거기에서 성삼문 등과 함께 세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고향인 충청도 관찰사로 근무하다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예문관 제학이 되었습니다.
 
한양에 근무하면서 살았던 집이 현재의 한국의 집이 있는 그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생지였던 대전 가양동 터는 지금 박팽년 유허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답니다.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세종의 신임을 받고 출세하였기에 세종의 유지를 받들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아득한 옛날이니 충절과 신의는 또 남 달랐겠지요.
 
그러나 역모로 발각되면 삼족을 멸하는 처벌을 받게 되는데 가족과 친인척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사육신의 처신은 일면 이해가 안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의 절개와 지조는 논외로 하고 말입니다.
 
박팽년은 효수형에 처해지고 부모 형제, 아들까지도 죽임을 당했으며, 부인과 딸은 다른 사람의 노비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박팽년 표지석에서 한국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한국의 집 전경
 
 

 
한국의 집 앞에 취선관이 있더군요. 특색있게 지었습니다.
 
지금은 전통 한식 교육관, 영빈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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