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43년차 어느 서울 택시기사의 이야기 본문

서울 택시세상

43년차 어느 서울 택시기사의 이야기

희망연속 2025. 1. 10. 12:25

 
인천공항 택시대기장 편의점에서 커피믹스 1개를 들고 계산하려는 순간, 아차, 지갑을 택시에 두고 왔지 뭡니까. 이놈의 정신 좀 보게.
 
그런데 옆에서 커피를 뽑고 있던 어떤 기사 한분이 이거 마시라며 들고 있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저에게 건네 주더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믹스커피가 좋습니다며 사양했는데도 굳이 권합니다. 마지 못해 받아 들고는 그냥 가기도 그렇고 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인상이 선해 보이더군요. 저는 사람 얼굴 인상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질 않겠습니까. 택시 하기 전에도 그런 면이 있었는데 택시기사가 된 뒤로 부터는 제 스스로 느끼기에도 사람 인상을 보는데 더욱 매진(?)하고 있습니다. 직업특성이니까, 뭐.
 
얼굴 생김새를 보고 대화 몇마디 나눠보면 시쳇말로 견적(?)이 나옵니다. ㅎㅎ
 
그분은 올해 74세, 서울 택시기사 43년차라고 했습니다. 와우, 놀랠 노짜.
 
제가 다니는 산악회에 38년차 기사분이 제가 알고 있는 가장 고참 택시기사인데 이분은 너끈히 그 기록을 깨뜨렸습니다.
 
말이 43년이지, 그런데도 의외로 때(?)가 덜 묻은 것 처럼, 선량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 직종에서 반백년 가까운 세월을 종사했다고 한다면 천직(天職)이라고 봐야죠.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나 그렇게는 못합니다. 
 
지방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서울 와서 회사 다니다 결혼을 했는데 월급이 적어 택시기사로 전직했다.
회사택시 7년 후 빚을 내 개인택시를 샀고, 2남 1녀를 낳아 키우느라 거의 미친 듯이 일했다.
자식들은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중이며 아직 막내 아들이 결혼을 안했다.
서울에 아파트도 마련했고, 아들 결혼할 때 도와 주고파 지금도 하루 10시간 이상,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
택시기사는 성실한 생활습관과 건강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힘이 닿는데 까지 일하다가 힘 떨어지면 택시 관두고 시골로 낙향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돈이 부족해 자식들 과외를 충분히 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엔 자식 3명 모두 서울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반듯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분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들 결혼하면 도와주고 싶어서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식들이 용돈을 주지만 한푼도 쓰지 않고 오히려 돈을 보태 돌려 준다면서 요즘은 그래야만 자식에게 대접받는 세상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정말 우연히 만나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인생에 도움될만한 좋은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누군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옛날에는 굶주리며 독립운동한 사람, 총들고 전쟁터에 나가 싸운 사람이 훌륭한 애국자였다. 지금은 열심히 땀흘려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애국자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택시대기장에서 4시간 넘게 기다리다 번호가 떠서 공항 도착장으로 나가는 중에 밤이니까 제발 집 방향 손님이 타기를 속으로 빌었는데, 이런 이런 광나루역 가는 손님이 타는게 아니겠습니까. 광나루역에서 집까지는 차로 불과 5분 거리입니다.
 
이걸 샐리의 법칙(Sally's Law)이라고 해도 되나요. 기쁜 일이 연달아 생겼으니까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