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대치동 학원가의 자가용 행렬을 보고 본문
저녁 8시 경, 교대역 부근에서 대치동 가는 손님이 탔습니다. 대치동이면 별로 땡기지 않는 곳이지만 집 방향으로 가는 코스이기는 합니다.
대치동에서 집 방향 손님을 다시 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 속에 도곡동 롯데백화점 부근에 도착했죠.
그런데 이게 도대체, 마땅히 택시를 댈 수가 없을 정도로 도로변에 자가용이 꼼짝 않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아차 싶었죠. 저녁 8시가 넘었으니 대치동 학원가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 되는 타임 아니겠습니까.
학원가는 보통 9시에서 10시가 문 닫는 시간이고, 지금은 10시 이후엔 수업이 금지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간신히 손님을 내려주고, 빠져 나와 집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집 근처 가는 콜이 울렸죠. 1분 거리. 잡을까 말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잡았는데, 역방향. 헉.
차를 돌려서 손님이 있는 곳 까지 거의 10분이 걸렸습니다. 1분 거리가 10분으로 바뀐 거죠.
차가 밀리면 콜을 잡는데 신중해야 하고, 잡고 싶어도 못 잡는 택시기사의 억울한(?) 심정을 손님들은 아는 지, 모르는 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손님이 택시에 타더니 전화로 "엄마 이제 택시 탔어, 간신히 잡았어, 나중엔 엄마가 데리러 와."
전화하는 내용으로 봐서 평소에 엄마가 픽업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왔고, 여학생이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타고 귀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다른 택시기사는 몰라도 저는 대치동 학원가를 잘 가지 않습니다. 길에서 손을 들고 탄 손님이 가자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콜은 안잡을 수가 있으니까요.
특히, 저녁 시간 대에는 학생들을 픽업하러 온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도로변을 점령하고 있어서 택시 한 대가 비집고 들어서기가 버거우니까요.
근처에서 콜을 불러도, 잡고는 싶은데 너무 차가 많고 빡빡하니까 쉽사리 잡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치동 학원가의 진풍경. 이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이 모습이 우리 시대의 학생들 진짜 모습일까. 머리가 갸우뚱해집니다.
꼭 학생들을 부모들이 자가용을 몰고 태우고 다녀야 할까요. 버스나 지하철 타고 학원 오가면 안되는 것인지.
지난 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무려 27조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구요. 중산층 가정에서 한달 생활비의 평균 40% 정도를 사교육비로 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저는 평소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학원 수업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그냥 자율에 맡기는게 효율적이라고 믿어 왔는데 전부 공허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식들에게 돈을 많이 들여야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일류 회사, 변호사, 의사 되는거라고 하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웬지 어깨가 위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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