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영어 아파트 이름 땜시 헷갈린 택시기사 본문
요즘 아파트 이름을 보면 무슨 영어 퍼레이드 하는거 같습니다. 도대체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말이죠.
가령 서울 성동구 성수동 100번지 현대아파트면 됐지 서울숲 힐스테이트, 서울슾 현대 힐스테이트 리버는 뭡니까.
복잡한 영어 이름 안붙은 아파트는 이제 낡은 구축 아파트로 찍혀서 아파트값이 안올라가는건 당연하고, 심지어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기를 못펴고 다닌다는 말까지 돌고 있으니까요.
외국에서는, 우리 대한민국만 빼고, 그냥 '00동 XX번지, 아파트 ㅇㅇ동 xxx호'로 표기됩니다.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죠.
서초구 반포동을 보시죠. 아크로 리버파크, 아크로 비스타, 아크로 리버 포레, 아크로 리버하임 등 도대체 어디까지 나갈 셈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현대식 며느리들이 시부모가 찾아 오기 어렵게 할 목적으로 난해한 영어표기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으니 말 다했죠.
저는 그나마 그런데 관심이 있고 해서 헷갈리지 않고 손님이 말하는 영어 표기 아파트를 실수없이 잘 태워 드리고 있다고 자부하는 1인이었는데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젯밤, 여의도역에서 카카오콜을 부른 20대 여성. 목적지는 성동구 응봉동의 무슨 아파트라고 했습니다.
원효대교를 건너 강변북로, 한남대교를 지나 용비교로 향하는 서빙고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고, 내비게이션 역시 똑 같았죠.
그런데 강변북로 반포대교 북단을 막 지나는데 손님이 "기사님, 목적지를 바꿔도 될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아, 당연히 바꿔도 됩니다." 했더니 '힐스테이트 서울숲 00'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뒷 부분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저녁시간의 강변북로는 그다지 밀리지 않아 속도를 제법 내며 달리고 있었죠. 그래서 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기가 약간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변경하려는 목적지가 당초 목적지와 비슷한 것 같았고, 힐스테이트 서울숲이라는 말은 분명한 것 같아서 그러면 서울숲 힐스테이트로 일단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내비게이션에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했더니 거리가 약간 늘어나고, 강변북로 영동대교 북단에서 우회전 하도록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보다하고 일단 내비를 따라 갔죠. 영동대교 북단에서 옛 이마트 본사 쪽으로 좌회전했고 얼마 안가 서울숲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보여서 정문 앞에 멈췄더니 손님이 여기가 아니고 더 가야된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변경 목적지가 '힐스테이트 서울숲 리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행 중이 아니니 조용해서 금방 알아 들었죠. 뒷 부분의 '리버' 2자리 때문에 이런 사고가 터진 것이죠.
하는 수 없이 그제서야 '힐스테이트 서울숲 리버'를 내비게이션에 다시 말하고 찾아 갔습니다. 성수대교 북단, 금호역 방향, 금호사거리를 향해 갔더니 나오더군요. 정확히 3km 떨어져 있었습니다.
서울숲 힐스테이트, 힐스테이트 서울숲 리버, 참 어처구니 없는 영어 표기 아파트 때문에 이렇게 헷갈리기는 처음이었죠.
괜스레 여자손님에게 미안했습니다. 강변북로 주행 중에 못알아 들은 저에게 일단 책임이 있죠. 물론 저로서는 주행 소음 때문에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제가 미안하다고, 못 알아 들어서 이렇게 됐다고 몇번이나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알아 듣기 쉽게, 찾기 쉽게 금호 사거리로 가달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로 옆이 금호사거리였으니까요,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손님 입장에서는 제가 고의로 돌아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고, '리버'라는 간단한 영어 단어 하나 못알아 듣는 꼰대 택시기사로 오해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요금으로 따지면 약 3천 원 정도 더 나왔을 거리이지만 깎아 주겠다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 여자 손님이 오히려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내리더군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택시요금이 문제가 아니구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제발 아파트 이름에 영어 어지간히들 씁시다. 그런다고 미국사람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식들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인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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