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택시손님으로 모신 군 의문사 김용권의 어머님 본문

돌아가는 세상

택시손님으로 모신 군 의문사 김용권의 어머님

희망연속 2021. 10. 29. 15:37

윗줄 맨 오른쪽이 김용권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

 

 

대학로 서울대병원 앞에서 팔순의 할머니께서 어렵사리 택시에 올랐습니다. 병원진료 후 약국에서 약을 받고 귀가하는 분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로 가자고 하십니다.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조금 빨리 가달라고 말씀 하시면서.

 

제가 궁금증을 보이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텐트농성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러 가는 길이랍니다.

 

그 할머니는 군 의문사 장병인 김용권의 어머니 박명순 할머니였습니다. 김용권은 양정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으로 입학하여 3학년인 1985년 10월 강제징집되어 의정부 카튜사 부대에 근무하던 중 87년 2월 20일 사망했습니다.

 

사망 전에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고 정신불안 증세를 보여 병원치료 중에 군 내무반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고 군에서는 자살로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망하기 이틀 전에 휴가를 나올 때도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던 까닭에 가족들은 군의 조사결과에 동의를 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냥 언론보도에 의문사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많이 보도되고 있어서 전부 조사가 마무리되고 보상까지 끝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더니 진상규명 조차 군과 국방부를 상대로 하는 만큼 너무 장벽이 많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며 보상문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실상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상을 들먹인 제가 큰 실수를 한 셈이죠.

 

학교 다니는 내내 공부를 잘했고,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아들이 꽃봉오리를 채 피워 보기도 전에 군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 왔으니 부모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홧병으로 10여년 전에 사망했고 어머니는 온몸이 병들어 움직이기 조차 힘든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도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오늘도 군 의문사 유가족들과 교대로 텐트 농성을 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인 80년대 초 반정부 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을 정신교육 명목으로 군대에 강제징집시켜 녹화 선도공작이라는 미명으로 교육 중 사망한 장병 숫자가 무려 1,152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민주정부가 집권하면서 DJ 정부때 2000년에 들어서야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2004년까지 활동했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2018년에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국방부와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료조차 구하기가 어려운 사정 속에 진실규명은 넘사벽일 수 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민주정부 때에는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라도 구성하여 한 조사라도 했지만 다른 당이 집권하면 그것마저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며 한숨을 짓는 할머니를 보고 저 역시 한없이 우울해졌습니다.

 

이제 몸이 안따라주니 건강한 분들에게 양보하고 좀 쉬시는 게 어떠시겠느냐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더니 아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해 수 십년을 땅속에 묻혀 있는데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며 죽더라도 아스팔트 위에서 죽겠다고 하시더군요.

 

만약에 죽지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50대 후반의 엘리트가 되었을 아들 김용권.

 

그 아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자 수 십년을 쫓아 다니고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들을 잊고 편히 생활하고 있는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망원인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서 남은 여생이나마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