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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서울 택시기사의 삶 6년

희망연속 2021. 6. 13. 19:46

 

비주얼이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침이 꿀꺼억. ㅎㅎㅎ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가 있는 홍어삼합을 비롯해 홍어무침, 산낙지 그리고 막걸리.

 

임금님 수라상(水剌床)은 잽이 안되죠.

 

사실 얼마 전 제가 택시에 몸담은 지 6년이 되는 날이어서, 조촐한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밖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번엔 웬지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문득 홍어가 생각 나 가족들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으로 제가 준비했습니다.

 

홍어는 원래 충분히 삭혀야 깊은 맛이 나는데 마트에서 산 탓에 별로였습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냄새 난나고 성화입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잔치상에 홍어가 있어야만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귀한 음식이란 것이겠죠. 

 

홍어삼합이란 음식도 원래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게 아니라 홍어가 귀한 탓에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홍어 맛도 느끼고 좋다고 해서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홍어 매니아는 전혀 아닙니다.

 

마침 오늘 'TV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에 서너살 어린아이들이 홍어를 먹는 장면이 나오길래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네요.

 

홍어하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직장생활 할 때 유난히 홍어를 좋아하는 상사가 계셨는데 그 분은 꼭 삶은 홍어를 드셨어요. 그런데 그 홍어 맛이 유난했습니다. 처음 먹는 사람은 코를 막고 간신히 홍어 한점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냄새가 강렬했으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어렵게 먹었지만 중독성이 강한 지 나중에는 제법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홍어는 전남 신안 부근의 바다가 주산지이지만 요즘 잘 잡히질 않아 지구 반대편 칠레, 아르헨티나 산 홍어를 수입해서 먹습니다. 맛은 뭐 그게 그거겠죠. 하지만 가격은 몇배 차이가 난다고 하더군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삭힌 홍어를 찾는데 옛날에는 홍어를 삼베에 쌓아서 두엄 속에 일정 기간 넣어두면 삭힌 홍어가 됐다고 합니다. 냄새가 지독한 건 말할 필요조차 없겠죠. 요즘엔 장독이나 냉장고를 활용해 삭힌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 앞에서 홍어 삼합을 먹노라니 맛도 맛이지만 여러 생각이 겹쳐서 기분이 참 유쾌 명랑합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제가 택시에 입문했던 것 처럼, 지금 역시 가족이 반대하는 홍어를 먹고 있으니 이게 참.

 

소소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타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제가 택시를 열심히 운행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 퇴직 후 할일이 없이 시간이 남아 돈다면 이런 작은 행복이 진정으로 느껴지기나 하겠습니까.

 

회사택시 3년, 개인택시 3년, 지난 6년 동안 제가 무언가 일에 몰입(沒入)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행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그만 할 때도 됐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직장 퇴직 후 새로운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단순하게 되는 게 아니죠.

 

아무튼 저는 택시운행에 6년째 몰입하고 있고, 사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핸들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난 6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6년을 생각합니다. 아니 그 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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