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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고싶은 곳

남한산성을 찾아서

희망연속 2019. 10. 1. 11:54

남한산성을 찾았습니다. 거의 십 수년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산성입구까지 갔습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왁자지껄 하군요.



입구에는 시민음악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시민이 '나 어떡해'를 제법 멋들어지게 열창을 하더군요.


한쪽에선 성남 통기타 동호회원들이 연습하는 모습도 보이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둘러 앉아 공휴일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데 맨발지압장이 나옵니다.


맨발걷기가 건강에 썩 좋다는 말을 들었던 지라 저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오늘은 일단 패스.




올라 가는데 사찰이 군데군데 많이 보이더군요.




탑공원이라고 하는데 웬 돌을 이리도 많이 쌓았을까요?




멋있어 보입니다.




완만한 경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부지런한 시민들은 산행을 마치고 벌써 내려오기도 합니다.


돌길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아주 힘들지는 않을 수준입니다.




통일기원탑까지..........




생태학습장도 있고,




소원탑도...............




백련사란 이름의 사찰이 더러 있더군요, 조그마한 규모입니다.




마침내 성남 누비길 1구간 주파.


입구에서 지화문까지 쭈욱 올라오면 됩니다.


말하자면 남한산성 트래킹 코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그래서 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입니다.





지화문은 원래 남문으로 불립니다. 남한산성의 정문이자 중심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문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도성을 떠나 광희문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왔을 때 바로 이 지화문을 통해서 산성 내 행궁으로 도피했고, 45일간을 버티다가 결국엔 이 문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됩니다.


무능하고 병신같은 임금 때문에 수많은 병졸들과 죄없는 백성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죽어 나갔습니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가 생각나서 지화문 앞에서 사진을 한컷 찍었습니다.


모름지기 가장은 가족들을, 사장은 사원들을, 대통령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고 배부르게 잘 먹이는 게 제1의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지화문을 지나 수어장대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 역시 평탄하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 그윽한 향기까지 가슴 깊숙히 스며듭니다.


상쾌합니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 우측에 남한산성이 천주교 성지임을 알려주는 비석이 있더군요.


조선 말기에 천주교 성도들이 많이 죽임을 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왼쪽 편으로 성곽이 보입니다.



수어장대 조금 못미쳐 청량당이 있습니다.


이 곳은 인조임금 때 남한산성을 축조할 당시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을 기리는 굿을 하는 곳이랍니다.


이회 장군은 산성 축조공사가 진행될 당시 물자를 빼돌렸다는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했는데 나중에 결백이 밝혀졌다고 하며, 이 때문에 그의 부인도 강물에 투신하였기에 그들의 넋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굿을 하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인조는 참 얼빠진 왕이었던 듯. 능력도 안되면서 임금 자리에 앉아 폼만 잡을려고 했나,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수어장대는 사적 57호로 보존되고 있는 유적입니다.


장대는 군대를 지휘하는 곳인데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망루 역할도 겸했다고 합니다.




수어장대 옆에 위치한 무망루


오늘은 수어장대까지만 돌기로 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행궁과 나머지 유적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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