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충주 하늘재와 미륵대원사지 본문
하늘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태종 때 문경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오래된 세월만큼 길 양쪽에는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문경 쪽에서 오르는 길은 고갯마루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포장을 해 놓았으나 충주 미륵리 쪽은 비포장도로이다.
따라서 하늘재 트레킹은 충주쪽에서 올라가는게 좋다.
충주 수안보 온천지대에서 승용차로 약 20 여분 달리면 하늘재가 나온다.
겨울이라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썰렁했지만.
하늘재 입구와 접해있는 중원미륵리사는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절터로서,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터를 잡고 있다.
중원미륵리사의 목조건물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5층 석탑(보물 제95호), 석불입상(보물 제96호)을 비롯해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3층석탑(지방문화재 제33호) 등이 남아있다.
중원미륵리사는 지난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작업을 통해 일연스님이 거처했던 '미륵대원'으로 밝혀졌다.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이다. 사각 석등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옮기기 힘든 대형 크기로 보아 원래 이곳에 있던 자연 암반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거북의 머리는 목을 앞쪽으로 내민 형상이며 눈, 코, 입 등은 뚜렷하지 않다. 발은 몸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등 부분에 거북의 등딱지 문양은 없으나 귀갑대(龜甲帶)는 부분적으로 보인다. 귀부(龜趺) 뒷부분에도 꼬리나 다리 등은 보이지 않는다.
외형상 거북의 머리와 몸을 하고 있고, 윗부분에 비석을 끼워 고정하는 홈이 있어 이 절터의 사적비를 받치는 데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석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지댓돌을 갖추지 않고 지상에 그대로 놓여 있으며, 뒷부분 일부가 조각이 덜 된 미완성 상태이다.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조각 수법이 일부 색다른 면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정교하지 못하고 엉성하다. 형태 역시 단순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거대한 거북의 모습에서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2005년 5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미륵대원이라고도 부르는 미륵리 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번창한 사찰이다. 또 귀부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비석 받침으로 사용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능 앞이나 탑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5층 석탑(보물 95호)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전각은 하나도 없지만 절집 특유의 경건하고 안온한 정서를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 같은 분위기의 대부분은 높이 10.6m에 달하는 웅장한 미륵불(보물96호)이 만들어낼 것이다.
추운 겨울 아침인데도 승려가 아침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겨울이고 눈이내려 하늘재를 가보지 못한게 걸리지만 미륵대원사지는 한번 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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