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충주 고구려비 본문
국보 제205호 충주고구려비
전에는 중원 고구려비였으나 충북 중원군이 충주시와 합병된 탓에 2012년에 충주 고구려비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으로부터 23년전인 1992년 봄, 충주호를 구경하다 돌아가는 길에 중원 고구려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먼지 풀풀나는 시골길 주변 조그만 비각안에 쓸쓸히 모셔져 있었지만 지금은 주변 환경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화했다.
아직도 전시관 주변은 이렇게 펜스를 쳐놓고 공사가 현재진행형이었지만....
저기 노란 조형물은 주작인지, 현무인지?
제법 넓은 주차장, 근사한 화장실은 물론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전시관 정면
전시관 밖에 고구려비를 원형 그대로 만들어 놓았다. 고구려비가 원래 있던 자리라고 한다. 미니어처는 아니다. 크기가 약간 작아 살짝 실망감.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 먼저 찾은 고구려비. 전시관 내부 중앙에 고이 모셔져 있다.
비석 모양은 만주 집안현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전후좌우 4면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1970년대 후반 발견당시부터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얼마 되지 않을 정도로 노후되었다고 하니, 안습 안습
남한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니 만큼 역사적 가치가 대단한 비석이다.
옛날 고구려 황금기에 이곳 충주는 물론 최인호의 소설 '잃어버린 왕국'에는 멀리 한반도 남단 김해지방까지 고구려의 힘이 뻗쳐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 물론 학계에선 이설이 분분하지만.
고구려비의 크기는 높이 203㎝, 폭 55㎝. 4면에 글씨를 새기고 앞면 10행 23자씩, 왼쪽면 7행 23자, 후면 9행, 우측면 6행으로 4면 전체 700여자가 새겨져 있으며, 현재는 200여자만 남아있다.
그러나 비석이 광개토대왕비와 거의 흡사하고, 남은 글자의 뜻을 판독한다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영토확장을 기리어 후대 왕이 세운 비석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해를 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쌍방화친을 하면서 고구려가 형이 되고 신라는 아우가 된다는 뜻이 있다.
1970년대말 충주고구려비를 발견하게된 경위, 비석의 가치 등을 기록한 비문이다.
비석이 발견되기까지 거의 1,500년 동안을 모진 세파에 휘둘리도록 그대로 방치한 우리 후손들의 몰지각이 안타까울 뿐이다.
방앗간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던 비석의 글씨가 아무래도 이상했던 마을주민들과 역사동호회에서 단국대 사학과에 조사를 의뢰했고, 정영호 교수를 중심으로한 발굴단에 의해 1979년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으니....
전시관에는 고구려비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기상을 기리는 여러가지 기념물, 유적 등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고구려 최정예군대인 기마무사 모형. 원래 말에 철갑을 씌워야 맞는데 이건 그러지 않았다.
충주 고구려비는 남한내 유일한 고구려 관련 기념비인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고, 전시관도 제법 성의껏 잘 만들어 놓았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충주지방 여행 시 꼭 관람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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