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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야간에 강변북로에서 내려달라는 택시손님

희망연속 2026. 1. 15. 01:03

 
택시영업을 마감할 때 쯤이면 저는 대개 마포, 용산을 거쳐 강남, 송파를 경유해 강동구 쪽으로 오게 됩니다. 하루 영업패턴 공식이죠.
 
물론 아침 6~7시경에 일을 나가서 저녁 8시경에 귀가하게 됩니다.
 
그저께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약간 늦게 출발한 관계로 퇴근시간 역시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밤 10시경, 신촌 부근에서 강남가는 콜을 잡았고, 옳구나 잘됐다 쾌재를 불렀습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으로 보이는 여자손님이 택시에 탔고, 양화대교 북단, 강변북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강변북로 마포대교 부근을 달리고 있는 중에 여자손님이 갑자기 강변북로에 그냥 내려 달라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깜짝 놀래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위험해서 정차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갓길에라도 좋으니 내려달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우기더군요. 그래서 택시 속도를 늦추면서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남자친구가 데려 오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택시에 탈 때부터 계속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 타고 가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 남자친구가 야간에 왜 택시를 타느냐, 위험하다, 빨리 내려라, 내가 데리러 가마. 아마 이런 상황으로 판단되었죠.
 
목적지까지 시간 얼마 걸리지 않으니 그냥 가는게 좋겠다고 말했더니 무조건 내리고 싶다고 막무가내였죠. 그럼, 좋다. 그러나 강변북로는 자동차전용도로여서 차량의 주정차가 되지 않으니 가까운, 안전한 곳에 내려 주겠다고 말을 했죠.
 
여자손님이 OK해서 서부이촌동, 한강대교 북단 램프로 나와 이촌동 쪽에 있는 주유소 앞에 택시를 멈추고 내려줬습니다.
 
그나마 택시기사로서의 책임감을 발휘해 조명등이 환해서 조금이나마 안전할 것으로 보이는 주유소 부근에 내려 드린거죠. 여자손님은 죄송하다며 인사하고 내렸지만 저는 찜찜한 마음이 가라 앉질 않더군요.
 
가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여자손님이 쳐다 보고 있어서 피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택시를 포함한 모든 차량은 강변북로와 같은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갓길 통행과 주정차는 금지되고 있습니다. 운전자의 상식에 속하는 것이죠. 이를 위반하면 승용차는 4만원, 승합차는 5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합니다.
 
그러한 처벌규정을 넘어서 택시는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민형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죠.
 
여자손님을 내려드리고 돌아 오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일을 끝마치고 늦은 시간 귀갓길에 택시를 타게 되어 남친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남자친구가 야간에 위험한 택시를 왜 타느냐, 당장 내려라, 내가 데리러 가겠다, 택시기사들 믿을게 못된다 뭐 그런 내용으로 전개된 것 같았습니다.
 
아까 택시에서 여자손님이 전화에서 계속 괜찮아 어쩌고 대화하는 것을 들었던게 바로 그런 내용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해는 갑니다. 택시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택시에 대한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는거 말입니다. 그러나 택시기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주 늦은 시간도 아닌 밤 10시경이었고, 마포대로, 강변북로, 강남까지 가는 길에 다른 일이 일어날 여지나 그런게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선입관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엣날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가 생각나는게 바로 이런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고 했죠. 장님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한 후에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니 장님들이 각기 다르게 말 하더라는 이야기.
 
모든 일이 이와 같다고 봐야죠. 전체를 보지 못하면 사물의 일부분이 전체인 것인양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들어 주절주절 해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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