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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택시기사와 희로애락(喜怒哀樂)

희망연속 2023. 6. 18. 15:56

택시기사만큼 희로애락(희노애락이라고도 하죠, 두음법칙 때문에 그럴겁니다)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직업은 찾기 힘들겁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택시는 문자 그대로 기쁜 일, 화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등이 수시로,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래서 택시일이 좋기도 하고 반면에 싫기도 합니다.

 

희(喜) : 생각지 않게 장타가 터질 때, 손님 연결이 잘 될 때, 좋은 코스의 손님이 탈 때, 손님이 팁을 줄 때,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손님이 탈 때, 예의바른 손님이 탈 때 등등 

 

노(怒) : 술취한 손님이 잠들어 일어나지 않을 때, 택시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갈 때, 흡연 등 손님이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할 때, 좁은 골목길, 지하 주차장을 가자고 할 때, 콜을 불러놓고 늦게 나오거나 할 때, 교통도덕을 잘 지키지 않는 차량을 볼 때 등등

 

애(哀) : 영업이 잘 안될 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말하는 손님을 만날 때,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손님을 볼 때 등등

 

락(樂) : 어르신 등 거동이 불편한 손님을 태우고 보람을 느낄 때, 휴대폰 등 귀중품을 찾아 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남들은 쉴 때인데 택시일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택시일로 번 돈으로 보람된 곳에 쓸 때 등등

 

이 외에도 당연히 많이 있겠죠. 택시 일의 특성상 다른 직업보다는 참 역동적, 다이내믹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늙을 시간이 없습니다. 젊게 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ㅎㅎㅎ

 

엊그제 오후 5시쯤 됐을까요. 잠실을 지나다가 경기도 양평을 가는 콜이 뜨길래 잡고 손님께 갔더니 30대 후반? 40세 가량의 여성 손님이 택시에 오릅니다.

 

그런데 첫눈에 봐도 얼굴 빛이 심상치 않더군요. 기사님, 목적지를 변경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묻길래 예 말씀하세요 했더니 양평병원으로 해달랍니다. 그러면서 아버님이 산에서 다쳤는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힘없이 말을 합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어떤 말을 할지 몰라서 그냥 많이 안 다치셨을겁니다 하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오빠하고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 곁에 엄마가 있지만 아무튼 오빠도 빨리 와라 하고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별 말이 없이 조용했습니다. 

 

50분 정도를 달려 양평병원에 도착해서 내려 드리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 집으로 왔습니다. 오는 길에 남양주에서 이태원 손님, 이태원에서 집방향 오는 손님을 태워 영업이 괜찮았죠.

 

집에 돌아 와 TV를 보는데 양평병원이 화면에 보이고, 60대 남성이 산에서 나무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헉, 이럴 수가. 틀림없이 아까 양평병원에 모셔다 드렸던 그 여성손님의 아버님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인터넷을 보니 포털에도 뉴스가 뜨더군요. 25m 높이의 나무를 베다가 나무가 사람을 덮쳤다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그 여성손님 인상이 참 선하게 보였는데 이런 슬픔이 닥치는구나. 

 

돌아 가신분의 명복을 빌어 드리고, 손님뿐만 아니라 가족분들 모두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경우가 택시기사가 겪어야 하는 희로애락 중에서 애(哀)에 해당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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