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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택시영업의 소소한 기쁨

희망연속 2022. 11. 26. 21:09

택시는 어려운 직업입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기쁜 일, 행복한 일보다 훨씬 많죠. 사실입니다. 그러니 택시기사가 부족하죠.

 

그렇지만 택시영업이 주는 기쁨도 상당합니다.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한강변 도로를 손님을 싣고 달릴 때면 기분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부러라도 새벽 드라이브를 할 참인데 그 것도 돈을 벌면서 하니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손님을 태울 때, 이 것도 큰 에너지원이 됩니다.

 

택시의 묘미(妙味)를 알턱이 없는 일반인들은 이해가 안가겠죠. 그러나 택시를 해본 사람은 압니다. ㅎㅎㅎ

 

어제는 일이 술술 잘 풀린 날이었습니다.

 

개인택시 부제가 해제된 뒤로 영업에 약간 애로가 있었는데 어제 오전에 사당동 이수역 부근에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손님을 모셨습니다.

 

약 1시간, 43km를 달려 42,000원을 받았습니다.

 

향남은 저에게 특별한 곳입니다. 바로 부모님과 동생이 영면하고 있는 추모공원이 있기 때문이죠.

 

 

화성시 향남읍 소재 효원가족공원

 

손님이 내린 화성 종합경기장 인근에서 효원납골공원까지 약 10분 거리. 당연히 들러야죠.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 뵐 때가 되기도 했습니다. 2달에 한번 정도씩 추모공원에 들리는 편이어서 이번 달에 곧 뵈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올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부모님과 동생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효원납골공원 정문을 나서는 순간, 이게 웬일, 인천국제공항 콜이 뜨는게 아니겠습니까.

 

ㅎ, 어떻게 여기서 인천공항 콜이 뜨지?

 

카카오 멤버쉽 목적지를 서울 강남구로 할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인천공항으로 맞췄는데.

 

손님 계시는 곳까지 9분, 인근에 있는 허름한 공장이었습니다. 언덕길을 굽이 굽이 올라가는 동안, 혹시 장난콜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었죠.

 

다행히 손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베트남인 3명, 구닥다리 캐리어 2개를 함께 싣고 인천공항까지 가는 동안 전혀 말이 없이 잠만 자더군요.

 

아마 일 때문에 많이 피곤했던 것 같고, 잠시 휴가를 얻어 고국에 가는 길인 듯 했습니다.

 

1시간 넘게 85km를 달렸더니 요금은 67,000원 정도 나왔습니다. 서울 택시여서 인천공항은 시외 할증이 적용 안되므로 요금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는 내내 그냥 고맙다는 생각만 가득 들었습니다.

 

추모공원을 나오자마자 콜이 떴고, 사실 화성시에서 서울택시에 인천공항 가는 콜은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더욱이 부모님과 동생을 찾아뵙고 나오는 길이었기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단순히 택시요금 몇만 원으로 치부될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이수역에서 화성시 가는 여자 손님 역시 어머님이 향남에 혼자 살고 계시는데 연세가 들어 건강이 안좋은 상태이고, 그래서 자주 찾아 뵙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자 손님의 말투나 자세 역시 효심이 매우 깊고 공손하게 느껴졌습니다.

 

택시를 한지 8년 가까이 되가는데 아마 오늘이 가장 기분 좋은 날로 기록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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