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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택시손님의 기본적 예의

희망연속 2021. 11. 1. 13:43

 

세상이 어지러운 편이긴 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룰, 기본적인 선이 있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나름대로 정치인의 기본적 예의에 대해 제 생각을 써보기도 했었죠. 

 

정치인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예의, 기본적인 매너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게 동물과 다른 점 아닐까요.

 

https://blog.daum.net/hanil5/8279754

 

정치인의 기본적 예의

택시영업을 하면서 하루평균 23명의 손님을 태우고 있습니다. 손님이 타고 내릴 때 반드시, 빠짐없이 나이, 성별에 상관하지 않고, 제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연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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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운행하면서 하루에 25명 가까운 사람을 상대합니다. 좋은 사람도 많은 반면에 속상하게 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성격 또한 전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금년 가을엔 비가 적지 않게 내렸죠. 한꺼번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조금씩 자주 왔습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저녁 8시쯤 되었을까요. 어두컴컴했습니다. 강남에서 콜을 받고 20대 여자 손님을 태워 약 30분 이상을 달려 어느 동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밤이고, 비가 내리는 탓에 아주 신중 모드였죠.

 

목적지까지 1분, 얼마 남지 않은 상태, 뒷골목 두갈래 길, 당연히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데로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말마적인 비명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뭐하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거냐구요? 이쪽으로 가야지 왜 그쪽으로 들어가요.

 

예? 

 

쇠를 가르는 듯한 여성의 비명소리는 제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로 크고 앙칼졌습니다. 영문을 몰라 일순간 당황했죠.

 

집이 왼쪽이란 말이에요. 빨리 차 빼요.

 

아니, 내비가 이쪽으로 가리켜서 들어 왔는데요. 이 골목 끝이 잖아요. 바로 저기 인데요.

 

왜 내비가 그쪽으로 안내해요. 여기서 내릴게요. 별일을 다보겠네.

 

여자 손님 목소리가 여전히 금속성의 신경 거슬리는 투로 마치 범죄자에게 하는 말투여서 저도 냉정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다시 가리키며, 손님, 00동 00번지 00호 맞죠? 바로 저 앞 아닌가요?

 

휴대폰에 있는 목적지 주소를 손으로 가리키며 천천히 다시한번 읽었습니다. 

 

그제서야 반응이 옵니다.

 

아, 내가 주소를 그쪽으로 찍어 놓았지. 

 

카드를 찍고는 미안하단 말한마디 없이 그냥 왼쪽 골목길로 사라져 버립니다.

 

말하자면 콜 부를 때 일부러 목적지 주소를 자기 옆집 주소로 찍어 놓은 것이죠. 자기 집주소를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의로 그런 겁니다.

 

여성손님들이 신분노출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그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여자손님도 그렇게 옆집으로 찍어 놓고 그걸 깜박 잊고 있다가 골목길 앞에서 택시가 다른 길로 간다고 생각하고, 야심한 밤에 혹시나 납치? 그래서 비명을 질러 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릴 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혼비백산시킬 정도로 비명을 내질렀다가 나중에 자기가 잘못 한 것을 알았으면 최소한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런 말 한마디만 하고 가면 되는 것인데 그냥 쌩까고 가버리면.

 

택시기사와 손님 사이에 크고 중요한 인사가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최소한의 말 몇마디, 간단한 인사면 족한 것을. 

 

그게 택시손님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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