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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법인택시 영업 첫날의 추억

희망연속 2021. 8. 18. 19:52

 

택시운행 6년이 훌쩍 지난 오늘, 갑자기 택시 첫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자료를 뒤적거리다보니 제가 법인택시 운행 2달 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더군요. 그러니까 2달 동안을 택시운행에 몰두하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6월 초,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30분을 걸어 회사에 첫 출근하던 날, 배차부장에게 신고한 후 주황색 택시를 배차받아 처음 영업을 나갔습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질 않습니다. 다만 계기판위에 85,000km 숫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85,000이 아니라 85만이었습니다. 당황하다보니 소숫점 하나를 구분 못했지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휴대폰으로 찍은 그 사진이 나중에 제 실수로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만에 하나, 재수없게 오늘 도로 위에서 멈춰 서버리는게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잠시, 엑셀을 밟으니 10만도 채 넘기지 않은 제 자가용보다 훨씬 더 매끄럽게 잘 나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던 택시에 대한 선입관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럴 땐 저는 애국자가 됩니다. 국산차 대단하다. 100만도 까딱 없겠다. 근데 왜 다들 비싼 외국차 살까.

 

그런 생각과 함께 회사를 막 나가는데 어떤 중년 남자분이 손을 들더군요. 월드컵 구장앞 석유기지로 가자고 합니다.

 

하 이런......

 

손님을 금방 태운 것 까지야 좋았는데 회사앞에서 월드컵 구장까지 가는 길이 막막하더군요.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첫날 첫운행 생짜 초보임을. 그랬더니 그 손님은 너무도 친절하게 가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분이 그러더군요. 혹시 종교가 있느냐. 이상하게 믿음을 가질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고 이야기 했더니 꼭 기독교나 불교가 아니어도 나만의 믿음, 신앙이 있으면 살아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말을 해주시더군요.

 

자기는 기독교 목회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꼭 기독교를 믿어라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교회에 나올 것을 강권하다시피 하는 다른 분들하고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그 손님은 제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첫 손님을 그렇게 태워다 드렸지만 그 이후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당황했었고, 어렵게 12시간 영업을 마치고 개스를 넣기 위해 충전소에 차를 대고 택시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리는 후들후들, 전봇대가 저를 향해 넘어오는 듯,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당시 사납금이 130,000원 이었는데 당연히 3만 원 정도 펑크냈구요.

 

그렇게 1주일을 지나고 보니 몸무게가 7kg이 쑥 빠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직 잠자고, 먹고, 핸들 잡고. ㅎㅎㅎ

 

회사 직원 분들과 주변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조금 있으면 체중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전부 익숙해질거라고.

 

며칠 지나니 사납금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었고, 택시란 이런 것이구나 요령도 많이 터득이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서울 택시기사로 순조롭게 녹아들고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어렵다, 힘들다, 택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쉽게 살아라며 그만 둘 것을 많이 종용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저는 직장에 있을 때부터 퇴직 후를 자주 생각했었고, 택시기사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그날 운행기록을 돌아보며 인터넷 지도를 펴고 길 익히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좋다해도 택시기사는 길을 많이 알아야 유리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퇴근하기를 3년. 몸이 아프거나 다른 일을 핑계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3년 세월이 훌쩍 지나 개인택시를 구입하게 되었고, 다시 3년을 넘기고 있으니.

 

지금에야 세상이 또 변해서 4박 5일간의 교육만으로 개인택시를 구매하여 운행할 수 있지만 작년까지는 회사택시 3년 무사고 운행경력이 있어야만 개인택시를 운행할 수 있었죠.

 

개인택시는 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30여년 직장생활을 마친 후에 다시 얻은 소중한 일터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 새로운 직업이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미니멈 75세, 미디움 80세, 맥시멈 85세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만, 힘닿는 그날까지 최대한 열심히 운행하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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