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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너무 아쉬운, 그래서 아직도 기억나는 택시손님

희망연속 2021. 1. 29. 09:15

 

2018년 26.2명

2019년 25.3명

2020년 21.1명

 

무슨 수치냐구요? 제가 하루에 택시로 모신 손님 숫자입니다. 일일 평균탑승인원이죠.

 

작년에 코로나 영향으로 손님이 하루 4~5명 정도(약 20%)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는데 탑승 손님 숫자도 그렇지만 실제로 중장거리 손님이 확연히 감소했습니다. 코로나 영향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직장 정년퇴직 이후에 저의 온힘을 기울여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도 결국엔 언젠가 물러 나겠지요. 그 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일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택시업의 기쁨 중에 택시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꼽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손님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그렇지만 정말 다양한 손님을 실제 만나는 그런 소소한 기쁨이랄까, 인생의 소중한 체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택시손님은 정말 각양각색, 천태만상이죠. 좋은 손님이든 그렇지 않은 손님이든 오래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습니다.

 

제가 모셨던 수많은 손님 중에 가장 아쉬웠던,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손님이 1분 있습니다.

 

작년 10월쯤이었을겁니다. 강남 선릉역에서 남자손님이 탔는데 다른 여성분이 "안녕히 가세요"하며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택시에 탄 남성분이 수원시 연무동 주소를 알려주며 가자고 하더군요.

 

수원은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고, 연무동 또한 제가 15년을 살았던 조원동 옆동네여서 가는 내내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어디어디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예 하고 짤막하게 답변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대화도 없었습니다.

 

연무동 좁은 골목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손님 다왔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말없이 신용카드를 줍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내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한참을 지나서는 기사님, 제가 시각장애인인데 문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내려서 문을 여니 40이 채 안된 남자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빌라 단지 안으로 들어 가더군요. 손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대로 있었습니다. 한참을 보내고 차를 돌려 나왔는데 제 마음한켠이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당장 달려가 택시비를 돌려 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됩니다. 물론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서야 손님이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을 밝혀서 제가 실수 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빌라에 사시는 그분,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시더라도 오래 오래 무탈하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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