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외도 보타니아 설립자 '이창호, 최호숙' 본문
아들 면회차 휴가를 내고 진주 공군교육사에 들렀다가 거제에 있는 외도를 구경했다.
외도 보타니아.
지금은 이미 작고한 민간인 이창호씨가 수십년전에 조그마한 섬을 사들여 갖은 고생끝에 오늘날 굴지의 서양식 정원으로 일궈내어 많게는 하루에 1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들고 있는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나는 오늘날의 외도를 만든 이창호씨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도에 있는 기념관에서 주의깊게 그의 흔적을 찾아봤다.
2003년 불과 70세에 유명을 달리한 이창호. 너무 아까운 나이 아닌가.
부인 최호숙 여사가 지은 추모시 비석에는 이창호님의 생년이 1937년으로 되어 있으나 아마 호적상 그렇게 된 것이고 실제 생년은 1934년이 맞는 것 같다.
처음엔 귤나무 심고 가축도 길렀지만 바닷바람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니,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나 보다.
그런데 그의 사망원인이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최호숙 여사의 추모시에 의하면 운명하기 마지막날까지도 외도를 위해 일을 하다가 운명했다고 하니 아마도 오늘의 외도를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한 후유증때문이 아닐까.
너무 안타깝다.
외도 기념관 한구석에 있던 사진.
김영삼 대통령은 거제가 고향이니 방문은 당연했을터.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했으니 가보고 싶어도 못가봤을 것이고. 아마도 신지식인 선정 기념식에서 이창호씨와 악수한 사진일 것으로 짐작.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에 휴가차 인근 휴양지에 들렀다가 외도를 방문했다고 한다.
설립 당시 외도 해상농원이었으나 부인 최호숙 여사가 외도 보타니아로 회사명을 바꾸고 현재는 장남, 40여명의 직원과 함께 외도를 관리하고 있으며, 정원을 조성하지 않은 곳에 숙박시설을 비롯해서 다른 위락시설 설치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외도 관광객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대단할 것이라 생각되어 괜히 샘이 날 지경이다. 정말 거제시민은 외도 설립자에 머리숙여 존경심을 지녀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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