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연극인 손숙,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본문
[내 인생 마지막 편지] 손숙 - 나의 대통령님께!
그 무덥던 8월의 어느날 대통령님은 떠나셨습니다.
병원에 계시던 내내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공연이 임박해서 정신없이 연습 중이었는데 무대에 있던 제게 방금 대통령님이 서거하셨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고 저는 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때 공연이 임박해서 정신없이 연습 중이었는데 무대에 있던 제게 방금 대통령님이 서거하셨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고 저는 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냥 머릿속이 하얗기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온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던 노 대통령님을 보내는 것 하고는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두 분의 아버님이 계십니다.
제 친아버님은 워낙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서 그냥 절 낳아주신 분 정도일 뿐, 육친의 정이라든가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절 한번 안아주신 적도 없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적도 없고 제 인생 안에 단 한번도 들어오신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제 마음속 첫번째 아버님은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신 이해랑 선생님이십니다. 저를 배우로 만들어 주셨고 배우로 인정해 주셨으며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제 의지간이 돼 주신 분이셨습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고 세상물정에 어둡기만 했던 저는 우왕좌왕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연습장에서도 안정을 못하고 늘 불안에 떨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 가득차 있던 저를 늘 거두어 주셨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두 분의 아버님이 계십니다.
제 친아버님은 워낙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서 그냥 절 낳아주신 분 정도일 뿐, 육친의 정이라든가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절 한번 안아주신 적도 없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적도 없고 제 인생 안에 단 한번도 들어오신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제 마음속 첫번째 아버님은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신 이해랑 선생님이십니다. 저를 배우로 만들어 주셨고 배우로 인정해 주셨으며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제 의지간이 돼 주신 분이셨습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고 세상물정에 어둡기만 했던 저는 우왕좌왕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연습장에서도 안정을 못하고 늘 불안에 떨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 가득차 있던 저를 늘 거두어 주셨습니다.
연습을 끝낸 저녁이면 후배들과 만나시는 자리건 친구들과 만나시는 자리건 늘 저를 불러 옆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제가 마음이 안 놓이셨던 거죠. 저는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겪어오셨던 파란만장한 선생님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그 힘든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든든하고 편안한 아버님 같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마음 붙일 곳 없을 때 저는 대통령님을 만났습니다.
그냥 든든하고 편안한 아버님 같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마음 붙일 곳 없을 때 저는 대통령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세상은 온통 삼엄했고 늘 대통령님은 감옥 아니면 집에서도 감시가 엄청나서 그 근처에 가는 것조차도 무서웠던 시절 어느 용감한 연극 선배 한분이 문안인사를 갔었는데 제 안부를 물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 저는 너무 죄송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공연 때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보내드렸고 대통령님이 제 공연을 보러 오셨습니다. 의자도 불편한 작은 소극장에도 오셨고 선거철 엄청 바쁜 와중에라도 꼭 공연장에 오셔서 박수를 쳐주셨고 전문가 못지 않은 연극평도 해주셨고 우리 배우들에게 저녁도 사 주셨습니다.
그러나 겁 많고 소심했던 저는 대통령님의 작은 부탁도 들어드리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되시고 라디오 지지 연설을 부탁하셨을 때도 저는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공연 때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보내드렸고 대통령님이 제 공연을 보러 오셨습니다. 의자도 불편한 작은 소극장에도 오셨고 선거철 엄청 바쁜 와중에라도 꼭 공연장에 오셔서 박수를 쳐주셨고 전문가 못지 않은 연극평도 해주셨고 우리 배우들에게 저녁도 사 주셨습니다.
그러나 겁 많고 소심했던 저는 대통령님의 작은 부탁도 들어드리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되시고 라디오 지지 연설을 부탁하셨을 때도 저는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을 갚아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지지 연설을 하고 나면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다고 제가 말씀드리니까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하시면서.
그리고 얼마 후 제 공연을 보러 오셨고 그날 연극이 끝난 후 저를 자동차에 태우셨어요. 댁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곧 사모님이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셨지요.
“얼굴이 너무 못 쓰게 됐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거 가지고 가서 꼭 보약 한첩 지어 먹고 몸 추스르라고 하시네요.”
그날 저녁 저는 동교동 대통령댁 대문을 나서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제 마음 속에 아버님으로 모셨습니다. 대통령이 되시고 온갖 일을 다 겪으시고 자주 뵐 수는 없었지만 저는 힘들고 기운이 빠질 때마다 ‘대통령님이 계시니까’ 하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제가 환경부 장관이 되고 러시아에 가서 공연을 하고 무대에서 금일봉을 받은 게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장관을 그만두던 날, 제게 전화하셨죠. “연극 잘하고 있는 사람 데려다가 날벼락 맞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저는 마음 속으로 ‘아닙니다. 그 말씀으로 됐습니다’라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시고 동교동에 인사하러 갔는데 집안은 너무 적막하고 두 내외분이 불도 제대로 안켠 어둑한 거실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려 앉았습니다.
이제 좀 마음 편하게 맛있는 것 잡수러도 다니시고 제 공연에도 다시 꼭 모시고 싶었는데 당신 운명은 끝까지 편안하신 운명은 아니셨던가 봅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신지요?
이제 8월이 옵니다. 대통령님 떠나시던 날 그 무덥던 8월을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영원한 제 마음속의 대통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 공연을 보러 오셨고 그날 연극이 끝난 후 저를 자동차에 태우셨어요. 댁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곧 사모님이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셨지요.
“얼굴이 너무 못 쓰게 됐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거 가지고 가서 꼭 보약 한첩 지어 먹고 몸 추스르라고 하시네요.”
그날 저녁 저는 동교동 대통령댁 대문을 나서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제 마음 속에 아버님으로 모셨습니다. 대통령이 되시고 온갖 일을 다 겪으시고 자주 뵐 수는 없었지만 저는 힘들고 기운이 빠질 때마다 ‘대통령님이 계시니까’ 하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제가 환경부 장관이 되고 러시아에 가서 공연을 하고 무대에서 금일봉을 받은 게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장관을 그만두던 날, 제게 전화하셨죠. “연극 잘하고 있는 사람 데려다가 날벼락 맞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저는 마음 속으로 ‘아닙니다. 그 말씀으로 됐습니다’라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시고 동교동에 인사하러 갔는데 집안은 너무 적막하고 두 내외분이 불도 제대로 안켠 어둑한 거실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려 앉았습니다.
이제 좀 마음 편하게 맛있는 것 잡수러도 다니시고 제 공연에도 다시 꼭 모시고 싶었는데 당신 운명은 끝까지 편안하신 운명은 아니셨던가 봅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신지요?
이제 8월이 옵니다. 대통령님 떠나시던 날 그 무덥던 8월을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영원한 제 마음속의 대통령님이십니다.
<손숙 | 연극배우> 경향신문 2012. 7.30일자
어제 퇴근 후 집에서 경향신문에 실린 손숙님의 '내인생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이 올라옴을 느꼈다.
8월 18일이면 김대중 대통령의 3주기이다.
잊고 있었는데 평소 존경하는 손숙님의 글이 내 굳은 머리를 세차게 때린다.
1999년이었지 아마. 손숙님이 환경부장관에 임명되고, 러시아 연극공연을 하러가고, 공연 후 무대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위문금을 받고, 그것은 당시 공연을 관람한 관람객들이 돈을 모아 2만불을 전달한 것이며, 그런것은 러시아에서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졌지.
장관이 해외나가서 연극공연한다고 헐뜯고, 공인이 연극공연후 돈을 받는다며.
그러나 알고보면 김대중 대통령을 철저히 물어뜯기 위한 그들의 계획된 만행이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터.
헐뜯기에 앞장선 신문이 중앙일보이고, 조동이 뒤를 이었는데. 노벨평화상 수상에 로비가 작용했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퍼뜨린 악랄한 언론이 중앙일보 아니었나.
난 그때 이후로 중앙일보는 안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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