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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고싶은 곳

이순신 장군 명량대첩비

희망연속 2011. 10. 9. 09:38

명량대첩비는 조선 숙종 14년(1688년)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대규모의 일본 수군을 울돌목[명량해협]의 거센 물살을 이용하여 물리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의 내용은 당시 이조판서를 지낸 이민서(李敏敍)가 지었으며 당대의 명필인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그러나 250여 년이 지난 1942년, 일제는 비를 강제로 철거하였다. 1945년 9월 이 곳 지역민들은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있던 비를 찾아서 1950년 3월 15일 충무사로 옮겨 세웠다.

 

비문에 의하면 명량대첩은 이순신이 재기한 직후 큰 기적을 올린 대회전으로 충무공이 세운 전공의 중흥이라 일컬으며, 충무공의 용병과 지리에 뛰어남은 귀신도 가동케 하였으며, 공의 임난토적(臨難討賊)에 있어 결책출기(決策出奇)함은 옛 명장들도 이에 미치지 못할 뿐아니라 충의의 분발은 해와 달을 꿰뚫는다고 하였다.

 

높이 267, 너비 114. 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가 원래 있었던 자리는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의 충무사가 아니고 충무사에서 900m정도 떨어진 문내면 동외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2011년 3월에 원래의 그곳으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른채 그냥 충무사로 올라갔다. 

 

그러나 충무사 경내에는 이전 안내판 하나도 없고 초가을 날씨만큼이나 적막했다.

 

 

 

 

충무사에 있었을 당시 명량대첩비 모습.

 

충무사에는 명량대첩비를 따로 새긴 기념석만 남아 있었으니.

 

충무사에서 나와 물어도 주민들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물론 내비게이션에도 아직 충무사로만 나온다.

 

물어물어 동외리 주거지역 뒷산에 있는 명량대첩비를 어렵사리 찾아갔다.

 

 

이전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명량대첩비만 달랑 옮겨놓고 주변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안내판은 물론 찾을 수 없었고 명량대첩비 앞에 살고 있는 주민들조차 아는 이가 드물 정도였다.

 

 

이런 골목을 지나지나 찾아갔으니

 

 

물론 주변정리가 되면 해남읍쪽 국도에서 쉽게 넘어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영 아니올시다.

 

하루빨리 정리작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전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어수선하다. 명량대첩비가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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