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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는 내 자신

희망연속 2009. 3. 13. 11:31




그는 키 168cm에 몸무게 61kg 가슴둘레 95cm의 평범한 체격.


직업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개인택시 운전사.

 

2002년 봄 8년째 잘 다니던 직장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이유는 ‘맘껏 자유스럽게 달리면서 살고 싶다’는 단 한 가지. 당시 살고 있던 조그마한 아파트를 팔아 개인택시부터 샀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산과 들로 날아다녔다.

“운전하는 날은 오전 5시에 일어나 북한산을 2시간 정도 달린 뒤 8시에 핸들을 잡습니다.

 

일하다가도 틈만 나면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다리들어올리기, 토끼뜀, 오리걸음 등 몸을 단련하지요. 쉬는 날은 장거리를 달리거나 스피드훈련을 하고요. 일요일에 마라톤대회가 많기 때문에 일을 못하고 쉬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그만큼 남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너무 즐겁습니다.”

그에게 산은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다. 2006년 5월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67km 산악마라톤에서 7시간43분의 기록으로 우승했다(현 최고기록은 7시간10분대).


보통 사람들이 15∼20시간 걸리는 거리를 그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낸 것이다.

그는 42.195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울트라대회에도 열심이다. 세계울트라마라톤연맹(IAU)이 주최하는 100km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개인최고기록은 7시간45분58초. 그는 왜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내 몰까.

“나를 벼랑 끝에 놓아두고 그 상황에서 헤쳐 나오는 게 즐겁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뭔가 이뤄 냈다는 뿌듯함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냥 이렇게 묵묵히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여성(35)과 눈이 맞아 지난해 장가를 들게 됐습니다. 집 사람도 풀코스를 40회나 완주했을(최고기록 3시간57분) 정도로 열성분자입니다.

 

아쉬운 것은 서로 시간이 없어 함께 달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집사람도 일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서브스리 페이스메이커로 참가… “가장 힘든 상대는 나 자신”

그의 꿈은 한국 최초 서브스리 100회 완주. 2007년까지 서브스리 97회 완주로 그 꿈이 곧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말 뜻하지 않게 왼쪽 발목에 건염이 생겨 지난해 1년 동안 거의 쉬어야만 했다.

 

그 사이 절친한 후배 심재덕 씨가 2008년 8월 먼저 서브스리 100회를 넘어섰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요. 그 대신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꼭 100회 서브스리를 이루겠습니다. 사실 첫 번째니 두 번째니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발목부상은 나 자신에게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번엔 서브스리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합니다. 다른 분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겠지만, 그만큼 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처음 동아대회에 뛰었던 그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는 단 한 명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지요.”

그는 46.2m²(약 14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아내와 둘이 산다. 요즘은 벌이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는다. 투덜댄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봉달이’ 이봉주처럼 성실하게 앞만 보고 가고 싶다. 부부가 몸 튼튼하면 되지 더는 뭘 바라겠는가.

 

이번 서브스리 100회가 끝나면 트라이애슬론도 하고 싶고, 암벽도 자주 타고 싶고, 잠 한숨 안자고 달리는 국토종단 마라톤도 원 없이 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엔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길은 수십 수만 갈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러너들은 적이 아니다. 적은 내 마음 안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다음 구절에 무릎을 쳤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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