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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제2의 직장, 택시운전사

희망연속 2009. 3. 4. 09:56

1일 인천 공항에 도착한 일본 인 에노키 미카(여·20·학생)씨는 입국장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택시기사 이광순(62)씨에게 다가갔다. 이씨가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자 미카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촌에 있는 그녀의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둘은 일본어로 서울의 맛집에 대해 한참이나 정담을 나눴다. 택시운전사 이씨가 1991년부터 1년6개월 동안 한국주택은행 도쿄 사무소에서 일해 일본어가 유창한 덕분이었다.

이씨는 지난달 말 서울시 가 모집한 '외국인 전용 택시운전사'에 지원해 선발됐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영어·일본어 전용 외국인 관광택시 300대를 시범운영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한 뒤, 외국어에 능통한 택시 운전사들을 뽑았다.

 

서울경찰청 외사과에 근무했던 경찰관, 국회에서 일했던 동시통역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운전사 235명이 선발됐다. 이씨는 그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다.




 


택시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 이씨는 컴퓨터 자판과 결재문서가 손에 익은 은행원이었다. 1968년 고려대 화학과를 입학한 그는 경제학에 심취해 홀로 파고들었다. 졸업 후 한국주택은행에 입사한 그는 줄곧 본부에서 증권·외환거래 등의 업무를 담당해왔다.

 

이씨는 1991~92년 주택은행 도쿄 지점(당시 사무소) 차장을 거쳐, 1992년부터 4년1개월 동안 같은 은행 런던 지점장으로 일했다. 그러곤 2001년 9월 정년을 맞아 회사를 떠났다.

이씨는 일을 쉬게 된 뒤 런던에서 만났던 '일하는 영감님'들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정년 퇴임 후에도 직종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그들이 멋져 보여서였다.

 

이씨가 일했던 런던지점 사무실의 빌딩관리인은 영국 통신회사 브리티시텔레콤(BT) 간부를 지낸 뒤 퇴직한 이였다. '블랙캡'(런던의 택시를 부르는 말)을 타도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일했던 나이 지긋한 운전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이들을 존중해주는 사회도 모두 부러웠어요."

'제2의 직장'을 찾던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택시 운전사였다.


런던 블랙캡에서 마주했던 퇴직 운전사들처럼 멋스럽게 살고 싶었고, '일을 할 수 있는 한 그만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로 배우지 않고도 갖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정년 장벽' 없이 취직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뒤따랐다.


이씨는 2003년 11월부터 3년간 회사 택시를 몬 뒤, 그 후론 2년 3개월째 개인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이씨는 "택시를 운행하는 것과 은행에서 일하는 것,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일할 때는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택시를 운전할 때는 허리·어깨 등 몸 구석구석이 아프다.

 

게다가 돈을 내지 않고 가버리는 승객,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승객을 상대하는 것도 은행에서 경험하지 못한 고역이었다.

이씨는 운전사로서의 제2의 삶을 열심히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아들 정우(29·법무관)씨에게 돌렸다. 2001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부자는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 적극 밀어주자는 묵계를 지킨다고 한다.

 

"택시운전을 시작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 멋질 것 같아요!'라며 기뻐하더군요."


이씨는 "아들이 사법연수원에 있을 시절에 아들과 그 친구들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서울까지 태워줬던 길이 택시 운행 중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들은 택시비를 내겠다고 우겼지만, 이씨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씨는 이런 답변으로 대신했다. "방금 '아버지 오늘도 몸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아들 전화를 받아 힘이 나네요.


손에 운전대를 잡을 힘이 남아 있다면, 그때까지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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