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가 선진국 모델로 막연하게 미국을 꼽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국내 사정상 유럽의 경우를 따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21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조찬 강연에서 ‘우리는 선진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선진국 모델은 여려가지가 존재한다”며 “좁은 국토와 인구밀도가 높아 주거분리가 안되고 불평등에 대한 내성이 낮은데다 평등의식이 높기 때문에 미국식 모델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불평등 도를 전제한 미국 모델 대신 유럽도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보다는 적합하다”며 “스웨덴은 우리 인구의 5분의 1밖에 안돼서 안 될 것이라 주장하지만 우리 역시 미국의 5분의 1 이어서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 미국보다는 유럽 모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꼭 하나의 모델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며 “이탈리아 중기 지원정책, 스웨덴 등의 노동자 지원교육과 같은 것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미국이 훌륭한 나라고 영리하게 구는 나라여서 배울 점이 많은 나라지만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유럽에 비해 잘못 알려진 점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일견 우리가 느끼는 유럽은 규제가 심하다거나 정부개입이 심하다, 복지병, 강한 노조 등의 관념이 퍼져 있는데 이들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규제가 기업에 부담이 되지만 돈이 잘 벌리면 규제가 많아도 사업을 한다”며 “한국, 중국, 스웨덴, 핀란드 등에 규제가 많지만 미국보다 성장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 경제 개입, 잘만 하면 이득"
정부개입과 관련해 장 교수는 “정부개입이 많다고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핀란드 등이 미국보다 강력한 산업정책을 썼지만 당시 이들 성장률은 미국보다 높았다”며 “잘못된 개입을 하면 경제가 해롭지만, 개입을 잘하면 이롭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구개발투자에 대해 장 교수는 “유럽은 정부 비중이 30%, 미국은 40%이상이지만 90년대 말 이전에는 50~70%였다”며 “산업정책을 안하는 것 같지만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강력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교묘하게 잘하는 나라”라며 “우리나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이 산업정책 안한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중.고등학교때 시험공부 다하고 시험 전에 방해 공작하는 격이다.
미국말을 믿고 우리가 산업정책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은 친구가 꾄다고 놀러 다니는 어리석은 학생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대신 “옛날식으로 윽박지르기보다는 이탈리아처럼 지역별로 중기 정책을 특화하는 식의 기업 지원 정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에 대한 편견 중 하나인 복지병에 대해 장 교수는 “복지지출 높은 핀란드, 노르웨이가 고성장 국가이고 스웨덴은 같은 일을 하면 다른 기업이라도 같은 임금을 주는 ‘연대임금’이란 제도가 있다”며 “복지제도와 노동자 재교육제도를 잘 연결하면 생산적으로 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산업이 위협을 받으면, 노동자들이 의료보험 등이 맞물려 있어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지만, 복지제도가 잘 된 스웨덴, 핀란드 등은 개방경제나 구조조정에 저항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국가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같은 것”이라며,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120~130㎞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20~30㎞ 밖에 달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럽이 노조 때문에 경제가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노조 조직률이 높은 핀란드, 노르웨이 등이 고성장 한다”며 “온 국민이 조직원이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단, 영국은 직능노조여서 한 회사에 여러 노조가 있어 노조가 나라를 멍들게 한 사례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어떤 모델에서 어떤 것을 따오더라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선진국들의 다양성, 우리에게 주는 함의 등을 살펴보고 선진화하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영감을 얻어 나름의 좋은 사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훈기기자 bo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