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진주 촉석루와 논개 본문
금년 설날, 고향가는 길
잠시 짬을 내어 진주 촉석루에 들렀다.
진주시문화재 제8호, 고려 공민왕 때인 1365년에 맨처음 지어진 곳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을 함락시킨 적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열녀 논개로 유명한 곳이다.
나 역시 머리에 털나고 처음이다.
촉석루 정문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3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 동상. 그런데 호가 충무공이다. 이순신과 동급이라...
영남지역의 정사를 보던 곳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의암에서 바라본 남강
강가운데 돌이 우뚝 솟았다는데서 촉석루란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논개 영정
그런데 이 영정은 일제때 친일파화가였던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것이라서 영정을 다시 제작중에 있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논개의 표준 영정이 금년 5월에 나왔는데 여기 맨밑에 올렸다.
논개가 투신한 의암에서 아들놈 사진 한컷.
그런데 의문은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빠져 죽기에는 너무 높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의암은 폭과 너비가 불과 3m,
물론 적장이 술에 취했고, 논개가 열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꼭 껴안았다고는 하는데,,,,,,,,,,,
물론 전설이 아니라 역사여서 믿을 수 밖엔 없지만 논개가 투신했을 때
다른 왜군들은 어찌했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굳이 추론하자면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남강 바닥이 퇴적물로 인해 당시보다 현재가 높아졌을 것이고
논개가 축하연에서 술에 취한 적장을 의암쪽으로 유인해서 함께 투신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정자에서 술에 취해 있던 왜군들은 아마 엉겁결에 당했을 듯
이 그림이 금년 5월에 새로이 제작한 표준영정이다.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가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옛 영정속의 논개는 조금 순박한 면이 엿보이는 반면
새로운 영정속의 논개는 다부지고 의지가 굳어 보이는 듯한 인상이다.
일부러 그렇게 그린건 아닌지
논개가 태어난 곳은 전북 장수군이다. 그래서 지금 장수군에는 논개생가와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논개생가의 영정.
이 곳의 영정도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