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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세상

‘73세 개띠’ 모범운전자 강난화할머니

희망연속 2008. 5. 24. 15:34



"개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이잖아요. 또 심부름꾼이자 사람과 함께 평생을 가는 길벗이며 동반자죠. 올해는 개띠해니까 많은 사람들이 개의 속성을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일흔을 훌쩍 넘긴 강난화 할머니(73)는 1934년생으로 개띠다.

이 나이면 대부분 손자들의 재롱으로 하루가 가게 마련인데, 강할머니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고 가로수를 누비는 현역 모범운전사이다.

"개띠라서 그런지 택시운전이 천직이 됐고 남이 가는 길을 함께가는 말벗, 길벗으로 한평생이 훌쩍 가버렸지요.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행복하죠." 
                 
 
길어지는 평균수명, 빨라지는 은퇴, 늘어나는 노년인생으로 말들이 많지만 은발의 강할머니에겐 낯선 나라의 일이다.

그렇지만 64년 택시운전을 시작한 40년 드라이버 인생이지만 유독 요즘은 힘들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며 올해는 그런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곳이 이곳 택시안이에요. 1평반도 안되는 이 공간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함축해 놓은 축소판이지요."

강할머니는 "운전사가 할머니다 보니 처음에는 말하기를 꺼려하던 손님들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풍파를 말할 때면 마치 자식 같고 손자 같아 마음이 짠하다"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위로를 더 많이 받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택시인생은 대부분 그렇듯 생활고를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됐다.

남편과 헤어진 후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한 할머니는 아들 셋을 키우기 위해 생활전선에 나섰고 식모일부터 노점상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길거리에 내놓은 좌판을 택시가 치고 달아나는 일을 겪은 후 '택시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몰게 되면 조금은 자유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운전을 배웠고 여섯달 만에 면허를 땄다.

40여년전 강할머니가 택시를 몰고 처음 서울 거리에 나타난 것은 당시 일대사건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차가 멈추기라도 하면 다들 할머니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냥 얼굴만 한번 보겠다며 일부러 차를 불러세우는 사람들, 여자가 운전하면 재수가 없다고 침을 뱉으며 내리는 손님, 재미삼아 진로를 방해하는 짓궂은 남자 운전기사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강할머니는 우리나라 택시운전 역사의 산증인이다. 택시의 종류도 시발, 새나라, 코로나, 뉴코티나, 브리샤, 포니 등 이름도 아련한 옛날차에서 최근 신형자동차까지 몰아보지 않은 차가 없다.

"예전에 처음 시작했을 때 택시 기본요금은 35원이었는데 지금은 1,900원이니 50배이상 올랐다"며 "실어나른 승객만도 아마 수십만명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힘에 부치지 않느냐는 말에 "일이 삶의 보람이지. 빈둥빈둥 놀면 무슨 재미로 사냐"며 "64년 운전대를 잡은 이후 한번도 은퇴를 생각한 일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자신의 역할을 세상이 필요로 하고, 체력이 받쳐주는데 왜 은퇴하느냐는 것이다.

요즘도 새벽부터 택시를 몰고 나와 10시간 이상 핸들을 잡는 강할머니는 자신의 건강 비결이 '운전'이라고 말했다.

택시운전으로 아들 셋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여성에게만 제한(45세)돼 있던 개인택시 운전면허 연령을 앞장서 철폐시켰다.

할머니는 단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은 '40년 무사고'의 대기록 보유자이다.

그 비결을 그는 "손님 욕심을 버리고, 돈 욕심을 줄이고, 스피드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몸을 낮추면 세상이 넓게 보인다"며 "손님들에게 항상 자신을 낮추면 행복해진다.
내가 택시운전 40년 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행복 노하우를 풀어놓는 강할머니.

어쩌면 이 말이 할머니가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삶의 기술이자 화두'가 아닐까.




〈글 김윤숙·사진 김문석기자 y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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