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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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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희망연속 2021. 3. 11. 14:18

 

<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 / 이가서 /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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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는 안도현 시인을 일약 유명 시인으로 만들어 준 시이다.

 

많은 이들이 위 시의 제목을 연탄재로 알고 있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은 "나를 아프게 채찍질하자는 뜻에서 쓴 시이며, 나 아닌 다른 이에게 한 순간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를 자성하면서 썼다.

 

그래서 제목을 '나에게 묻는다'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연탄재는 요즘 찾아 보기가 참 힘들다. 그만큼 세상이 변해버린 탓이다. 말하자면 정말 하찮은 물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탄재에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심오한 언어를 만들어 낸 시인의 감각과 이성이 놀랍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타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의문형 어미를 사용하여 연탄과 같이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지를 반문하면서 열정과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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