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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고의 기사는 이창호 9단

희망연속 2017. 8. 9. 20:09

“인류 최고의 기사는 이창호!”

 

‘돌부처’ 이창호 9단이 바둑사 5000년을 통틀어 최고의 실력자로 꼽혔다.

 

‘바둑 정론지’를 표방하며 1967년 8월에 창간해 한 권의 결호 없이 한국바둑과 함께 호흡한 월간 <바둑>이 통권 601호, 창간 50주년 기념호를 맞아 국가대표(30명)와 바둑기자·바둑관계자(20명)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번 설문조사 중 “역대 최고의 기사로 누구를 꼽겠느냐”는 질문에 이창호 9단이 21표(국가대표 17표, 바둑기자·바둑관계자 4표)를 얻어 16표를 받는 데 그친 오청원(우칭위안) 9단을 누르고 ‘역대 최고의 기사’로 뽑혔다.

 

1986년 11세의 나이로 입단한 이창호 9단은 통산 140회(국내대회 129회, 국제대회 21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무려 15년 동안 국내는 물론 세계바둑계를 좌지우지했다.

 

특히 그동안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통하던 두터움과 끝내기 분야를 개척하며 전성기 시절 ‘반집의 제왕’ ‘신산(神算)’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까지 그에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그를 석불(石佛)이라 부르기도 했다.

 

바둑의 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9단에 이어 ‘역대 최고의 기사’ 부문 2위에 오른 오청원 선생은 1930년대 기타니 9단과 함께 신포석을 창안하며 현대바둑의 새 지평을 연 기사다.

 

전성기 시절이던 1939년부터 1956년까지 17년 동안 진행된 10번기는 지금도 세계바둑인들 사이에서 ‘추억의 명국’으로 회자된다. 당시 당대의 최고 기사들과 벌인 10번기를 모두 이길 만큼 실력도 최강이었다.

 

이들 두 사람에 이어 3위에는 ‘바둑 황제’ 조훈현 9단(6표)이 이름을 올렸다. 기타 의견 중에는 중국의 커제 9단과 ‘우주류 바둑’으로 일가를 이룬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 9단도 있었다.

 

 

 

 

 

 

 

한편 “현재 최강 기사는 누구냐”는 질문의 결과는 최근의 국제대회 성적과 일치했다. 최근 2년간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를 4차례나 들어올린 중국의 커제 9단이 35표(국가대표 20표, 바둑기자·바둑관계자 15표)의 압도적 지지로 ‘현존 최강자’로 꼽혔다.

 

2위는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차지했다. 박9단은 국가대표로부터 7표, 바둑기자와 바둑관계자로부터 3표를 얻는 등 모두 10표의 지지를 받았다. 박9단은 올해 ‘일본의 알파고’로 불리는 딥젠고와 한·중·일 최고수가 겨룬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해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많은 표를 끌어내지 못했다.

 

3위에는 3표를 받은 이세돌 9단이 이름을 새겼다.

 

“3~5년 후 최강 기사를 누구로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한국의 유망주 신진서 8단(17)이 1위에 올랐다. 신8단의 총 득표수는 24표(국가대표 17표, 바둑기자·바둑관계자 7표)로, 18표를 얻어 2위를 기록한 커제 9단을 6표차로 따돌렸다.

 

1·2위간 표 차이가 근소한 것은 커제 9단이 이제 갓 20세(1997년생)에 불과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에 이어 3위에는 박정환 9단(5표)이 올랐으며, 중국의 미위팅 9단과 한국의 변상일 6단이 각각 2표로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이창호 9단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사라는데 나 역시 폭풍 동의한다.

 

이창호 9단이 레전드 중에 레전드라는 사실을 중국에서 더욱 인정하고 있고, 바둑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깊이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단어가 맨처음 생긴게 중국인들의 이창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나.

 

다만 한가지,

 

설문조사 표본이 우리나라에 한정된게 조금 아쉽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설문조사를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창호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상하이 대첩.

 

때는 2006년 농심배 국가대항전

 

국가대항전에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한국 대표팀에게 거는 기대는 컸으나 결과는 예상 외로 참담했다.

이창호 1명을 제외한 한국대표팀 전원이 탈락한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2명,중국은 3명이 남았고 가장 많은 기사들이 살아남은 중국은 당시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이 기뻐하며

자신들이 우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남은 기사 1명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이창호'였다.

 

                         

 

 

 

당시에는 많은 패배를 기록하며 전성기가 지난거 아닌가라는 평가를 받던 이창호.

 

한국 대표팀에 홀로 남아있던 이창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기사 2명 그리고 중국기사 3명 총 5명을 혼자서

연달아 격파해버리며 이른바 3%의 기적, '상하이 대첩'을 일궈낸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도 많은 바둑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경기 이후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이 남긴 말.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아무튼 올해 42세(1975년생)인 이창호 9단이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주기를 희망해 본다. 아직 뒤로 물러나기엔 아쉬운 나이다.

 

전성기의 이창호 9단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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