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소설 남한산성과 김훈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본문
우리나라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김훈을 꼽는다.
조정래, 황석영 등도 대작가임에 틀림없지만 요즘엔 감각이 상당히 무뎌진 느낌이 든다. 나이 탓일까.
하지만 김훈은 그렇지 않다.
올해 나이 일흔인데도 작품성, 역사의식, 치열함, 대중성 등등 아직은 단연 최고다.
소설 남한산성이 100쇄를 돌파했다고 한다.
100쇄 돌파 기념으로 책을 새롭게 냈는데 거기에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김훈과 김대중
역시 내눈은 거의 틀림없었다.
한겨레신문 2017. 6. 7일자
김훈 소설 <남한산성>이 100쇄 고지에 올랐다. 2007년 4월 초판을 낸 지 꼭 10년 만이다. 99쇄까지 판매 부수는 59만부. 출판사 학고재는 <남한산성> 100쇄를 기념해 한국화가 문봉선 홍익대 교수가 새로 그린 그림 27점을 수록한 ‘아트 에디션’(총 472쪽·4만3000원)을 내놓았다.
“<남한산성>에서 역사 담론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등장인물 편에 설 생각도 없었어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것들, 그러니까 시대, 말, 관념, 야만성 같은 것의 관계, 그것들이 인간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을 그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오도록 독자 여러분이 꾸준히 책을 읽어 주셨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훈은 “제 소설은 결론이 없는 소설이고, 말과 길 사이에 끼인 인간의 방황과 고뇌를 다룬 것인데, 문 화백이 그런 소설의 느낌을 잘 형상화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청의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인조와 신하들이 청에 맞서자는 척화파와 화의를 맺자는 주화파로 갈려 대립하다가 결국 임금이 삼전도로 내려가 청 황제 앞에 항복의 예를 표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척화파의 태두인 김상헌과 주화파를 대표하는 최명길이 각자의 언어와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남한산성> 100쇄 특별판에는 작가가 새로 쓴 원고지 120장 분량 후기 ‘못다 한 말’도 추가되었다.
이 글에서 작가는 <남한산성> 출간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눈 일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소설의 구석구석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에게 “김 작가는 김상헌과 최명길, 둘 중에서 어느 편이시오?”라고 물었다.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 이건 김상헌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오”라면서 최명길이 조선시대의 가장 훌륭한 정치가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이 주화파 최명길에 대해서 그토록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고 그는 덧붙였다.
“저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을, 정의의 이념을 간직하더라도 현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국회의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북한은 주적이냐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그것은 관념에 빠진 썩어빠진 질문입니다. 질문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북한은 강한 무력을 지니고 주민을 장악한 정치적 실체입니다. 싸움의 대상이자 대화의 대상이기도 하죠.
<남한산성> 배경인 청나라 때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몽롱하고 관념적인 말은 현실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5·16이 쿠데타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예요. 정의, 불의 같은 모호한 관념의 말들이 현실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는 “영광과 자존만 역사를 구성하는 게 아니고 치욕과 모멸 또한 역사의 중요한 일부”라며 “조선 시대의 사대란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교과서에서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는 온갖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의 시대적 베이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필요하지만, 작가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 글이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면 그것은 아마 문장의 힘이 독자를 끌고 갔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장과, 살아 있는 사람의 구체적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작가인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최근 그의 단편 ‘언니의 폐경’의 여성 묘사가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는 것과 관련해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여자를 묘사하는 데에 매우 서투르며 여자를 다만 생명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그것은 나의 미숙함이지 편견이나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올해 칠순을 맞은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서너편 정도 장편을 더 쓰지 않을까 싶다”며 “앞으로는 역사나 시대의 하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판타지의 세계를 쓰고도 싶은데 소망대로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남한산성>은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를 만든 황동혁 감독 연출로 촬영을 끝냈으며 올 추석 개봉 예정으로 후반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출판사 쪽은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인물의 안과 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상 최고의 기사는 이창호 9단 (0) | 2017.08.09 |
---|---|
외교인재, 강경화 외교부장관 (0) | 2017.07.31 |
진보적 참 지식인 한완상 전 부총리 (0) | 2017.01.06 |
바둑계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 (0) | 2015.08.02 |
명지대 강경대 열사 기념비 (0) | 201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