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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감동 '화순적벽'

희망연속 2014. 10. 31. 23:01

30여년만에 개방된 화순적벽을 관람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지방여행 기간에 맞춰 화순군청에 인터넷 예약을 해서 용케 관람기회를 잡았다.




하루에 3번, 35인승 4대의 버스가 운행된다. 


오전 9시 승차를 위해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약 30분을 더 가야한다. 울퉁불퉁, 꼬불꼬불, 뒤뚱뒤뚱


아무튼 재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괜한 설렘


안내를 맡은 화순군청 직원이 화순적벽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중국의 적벽을 훨씬 뛰어 넘는 절경이라며 자랑에 열심이다. 그래야지, 당연히.


모르긴 몰라도 중국의 적벽은 높이가 불과 20m 정도에 불과하니 규모에 있어 화순적벽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의 유명세가 있으니 단순 비교는 불가할 듯.

 

울퉁불퉁 차를 타고 가다 느낀 사실이지만 오랜 기간 주민통제를 했던 곳이라 오염되지 않은 태고의 신비를 지니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린 곳. 이 곳을 지나면 적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드디어 적벽앞에 섰다.


앞의 반원 모양의 절벽이 화순적벽이다.


높이가 80m 에 달한다고 하는데 30m 는 물속에, 지금은 50m 정도가 눈에 보인다.


날씨가 약간 흐려서 아쉽기는 했지만 절경은 절경이었다.









이들 적벽은 그냥 석벽으로 불리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화순으로 유배돼 온 문신 신재 최산두가 바위색깔이 붉다며 ‘적벽(赤壁)’이라 이름을 붙였다.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도 화순 적벽에 반해 인근 구암마을에 머물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묘는 아들에 의해 강원도 영월로 이장됐고 지금은 그의 시와 조형물만 적벽 근처 김삿갓 유적지라는 이름으로 화순에 남아있다..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無等山高松下在)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 (赤壁江深沙上流)’






1970년대 초에 적벽이 있던 동복댐 수몰과정에서 주변 민가를 이주시키는 바람에 약 5천세대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고 하며, 수몰 고향민들을 위해 명절에만 적벽을 개방해왔고 망배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올리게 했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주민관람을 쉽게 하기 위해 도로를 정비하고 전망대와 포토존 설치를 예정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반가우면서도 광주 전남지역 지역민의 상수원인 적벽 주변이 혹시 오염되지나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망향정 아래에 있다는 망미정엘 가보지 못한 것이다.


병자호란이 발생할 당시 화순의 정지준이 망미정을 짓고 군사들을 훈련시킨 곳이라고 하며 적벽 가까이 있던 것을 수몰을 피해 지금의 망향정 아래 수풀속으로 옮긴 탓에 눈에 잘 띠지 않은 것이다.





망미정의 현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한다. 1986년이니 5공 당시 사면복권이 되지 않은 상태의 험난한 야당 정치인 신분일 때 쓴 것인 듯 하다.


병자호란 의병장이었던 정지준과 고경명이 군사를 조련시킨 곳이어서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과 비슷한, 어떤 연대의식을 느끼며 직접 쓴게 아닐까.





위 사진은 동복댐이 수몰되기 전의 적벽사진.


아, 그리고 가이드 설명의 압권


상수원 보호가 중요해서 민간인 접근을 수십년 통제했더니 지금 적벽앞 저수지는 물반 고기반이라고 한다. 물고기가 너무 많으면 노폐물이 누적되어 상수원에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며 고민이 많다고 하니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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