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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앞두고 사법연수원에

희망연속 2010. 2. 25. 22:04

“환갑 앞두고 법조인 꿈 찾아 만감교차”

ㆍ‘시위 전력 사시 탈락’ 박연재씨 연수원 입소
ㆍ“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좋은 일 하라는 의미”


“성실히 연수를 마치고 억울한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몸담아온 언론계와 방법은 다르지만 법조도 사회정의 구현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과거 시위전력을 이유로 1981·82년 사법시험 최종면접에서 잇따라 불합격됐던 박연재씨(58)가 다음달 2일 사법연수원에 입소한다.
 
체신부 장관 등을 지낸 뒤 58세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송언종 변호사보다도 늦는 기록이다.

은퇴해야 할 나이에 뒤늦게 젊은 시절 꿈꾸던 길에 들어서는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입소를 앞두고 선산에 다녀오는 길에서는 ‘인간에게 과연 정해진 운명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박씨는 70년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전남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에만 매달리기에는 사회가 너무 혼란했다. 특히 71년에는 선거 부정과 교련수업 반대, 반독재 투쟁 등 이슈가 많았다.
 
그해 10월15일 전국 대학에 위수령이 내려졌고, 그는 시위 가담을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때의 ‘주홍글씨’는 1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월세방을 전전하며 공부한 끝에 81년 사법시험 1·2차에 합격했지만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3살짜리 딸을 키우기 위해 기자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하지만 법조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이듬해 면접장을 다시 찾았다. 면접장소였던 옛 중앙청 앞 관공서에 근무하던 한 선배가 “자네는 안되겠다”고 말해 넌지시 불합격을 암시했다.
 
박씨는 면접에서 최하점을 받고 사법시험에 탈락했다. 그때부터 그는 기자를 운명으로 알고 일했다. 현재 한국방송공사(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위원이다.

그에게 옛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한 곳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다. 위원회는 2007년 9월 시위전력으로 사법시험 면접에서 탈락한 응시자들에게 연수원 입소 기회를 주도록 정부에 권고했고, 이듬해 1월 박씨는 법무부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연수를 마치는 2012년 환갑을 맞는 그는 “수업일정이 빡빡해 이 나이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그런 박씨에게 힘을 준 사람은 고교시절 은사다.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지난 10년 동안 전문서적 5권을 펴낸 은사가 그를 불러 “박군, 아직도 안 늦었네”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스승의 말에 박씨는 손에서 놓은 지 30년 가까운 법전을 다시 잡았다. 아들·딸 같은 젊은이들과 경쟁해서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반드시 졸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는 “햇수로 30년 동안 기자를 했지만, 그런 것을 뒤돌아볼 여유는 없는 것 같다”면서 “연수를 잘 마치고 살아 있는 동안 뭔가 좋은 일을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입력 :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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