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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비껴간 술, 양평의 지평막걸리

희망연속 2009. 6. 11. 17:52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경기도 양평으로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여행의 설렘이 느껴진다. 30분, 1시간 차를 달리는 사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속에 대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월 저편의 운치가 녹아 있는 까닭이다.
 
거창한 역사가 아닌, 살가운 추억 속의 풍경을 간직한 양평에서도 한층 짙은 세월의 향기가 진동하는 지제면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지평막걸리 술도가가 옛 모습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평중고등학교 후문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평막걸리 술도가는 온몸으로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이다.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나무문을 활짝 열어젖힌 근대식 건물 앞에 버티고 선 늙은 느티나무는, 밑동 속이 텅 비었음에도 연둣빛 새잎을 늘어뜨려 빛바랜 건물에 봄빛을 드리운다.

“1925년에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했으니 80년이 넘었네요. 나는 30년쯤 전부터 아버지 밑에서 술 빚는 일을 배웠고, 지금은 형님이랑 같이 하고 있어요. 한때는 술도가 안이 바쁘게 일하는 일꾼들로 북적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형제하고 함께 일하는 두 명이 전부죠.”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일찌감치 술도가를 이어받은 방효연 사장(55세)과 마주앉은 사무실. 널찍한 유리창 너머로 온 동네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듯 낮은 술도가 문턱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아버지 술 심부름 온 아이가 찌그러진 술 주전자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다.
 

                             





예전에 백일섭 씨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홍도야~ 울지 마~라~, 아 글씨!’를 부르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 나온 술도가가 여기에요.
 
너무 오래된 드라마라 요즘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거야. 그때만 해도 주변이 온통 논밭이라 시골 분위기가 제대로 났는데, 이제 우리 술도가만 빼고는 죄다 달라졌죠.”

그때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는 방효연 사장은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다들 막걸리를 좋아해서 술자리가 끊이지 않았다”라며 허허 웃는다.
 
당시 술도가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길었던 탤런트 백일섭 씨는 그때 마시던 술맛을 잊지 못하고 요즘도 지평막걸리를 찾는단다.
 
세월의 흐름을 비켜선 듯 처음 그 건물, 그 술맛을 뚝심 있게 지키고 있는 지평막걸리에는 이렇게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으로 맺은 인연을 몇 십 년씩 이어 가는 단골들이 많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별로 없어요. 술도가도 그대로고, 술 만드는 방식도 그대로고.”

방효연 사장은 술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물맛과 정성을 꼽는다. 지평막걸리는 지하수를 쓰는데, 그 맛과 성분이 술 빚기에 잘 맞아 좋은 술맛을 낸다는 설명이다. 한결같은 정성은 방효연 사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부분이다.

“더 싸고, 더 편하고, 더 빠르게, 더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마다하고 예전처럼 정성을 들이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술도 음식인데, 손맛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 몸이 고되고 수중에 남는 게 좀 덜해도 그냥 하던 대로 할 수밖에요.”

지평막걸리의 작은 규모는 막걸리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선한 술을 빚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렇다 할 판매망이랄 것도 없이, 구멍가게만 한 판매장과 오랜 단골, 입소문만으로 판매되는 지평막걸리지만 제때 술을 공급하기 위해 술도가는 1년 365일 하루도 쉴 틈이 없다.
 
반죽을 만들어 익히고, 곰팡이를 배양하고, 밑술을 만들고, 술을 익혀 거르는 모든 과정이 하루 종일 방효연 사장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시골에서는 걸걸한 밀가루막걸리가, 도시에서는 부드러운 쌀막걸리가 잘 나간다는 말에 쌀막걸리를 한 잔 따라 맛을 보았다. 깔끔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에 톡 쏘는 탄산이 감칠맛을 더한다.
 
그 꾸밈없는 맛에 절로 다음 잔을 기울이게 되니,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 고된 술 빚기를 감수해 준 지평막걸리의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평막걸리 술도가 031-773-7030 / 지평막걸리 판매장 031-773-7029
(지평막걸리 1.7ℓ 1,700원 / 지평쌀막걸리 1.7ℓ 1,900원, 택배 주문 가능)


지평막걸리가 빚어지기까지

1. 반죽 : 밀가루 혹은 쌀로 반죽을 만든다. 수분이 많으면 발효가 되지 않고 부패하므로 마른 듯하게 농도를 맞춘다. 반죽이 되면 수분을 흡수하도록 30분쯤 방치한 후 익힌다.
 
2. 곰팡이균 배양 : 익힌 반죽에 배꼽균(흰 곰팡이균)을 넣어 잘 섞고 나무판에 조금씩 나눠 담아 48시간 동안 균을 배양한다. 균이 배양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이때 수시로 온도를 확인하고 위치를 바꾸어 가며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낮은 나무판을 쓴다. 실내 온도는 인체 온도와 유사하게 맞춘다.
 
3. 1단 사입 - 밑술 만들기 : 곰팡이균이 배양된 반죽에 물을 넣어 48시간 동안 효모균을 증식시킨다. 하루가 지나면 균이 배양되기 시작하고 이틀 째 됐을 때 새콤한 사과향이 나면 좋다. 두 시간마다 수시로 뒤집어 고루 숨을 쉬도록 해 준다.
 
4. 2단 사입 - 주정 발효 : 밑술보다 하루 이틀 정도 덜 발효시킨 원료를 밑술과 7:3 비율로 섞으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이 상태로 48시간 정도 두면 주정분이 생기면서 비로소 술이 된다. 1단 사입 때와 마찬가지로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뒤집어 준다.
 
5. 단백질 분해 : 주정 발효가 진행된 이후에는 단백질 분해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당분과 탄산이 생긴다. 이때 단백질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으면 맛이 떨어질 뿐 아니라 숙취의 원인이 된다. 요즘은 인공 탄산을 넣는 막걸리도 많지만, 지평막걸리는 단백질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 탄산만으로 톡 쏘는 경쾌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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