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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된 스텔라

희망연속 2008. 11. 30. 17:37

 

[달인 따라잡기]  자동차 오래타기 달인

  90년대 초반의 어느 초겨울, 하얀색 스텔라가 굉음을 내며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계기판의 바늘이 숫자 0과 180 사이에서 위 아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속도가 시속 180km를 넘어가면 바늘이 가리킬 곳이 없어 널뛰기를 하는 모양이다.

 신나게 달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저 앞에 경찰차가 있었다. 스피드건을 든 고속도로 순찰대원이 다가왔다. '지금 몇 km로 달렸는지 아세요? 시속 195km입니다.'

 운전자가 묻는다. '아저씨, 이 차가 무슨 차인지 아세요?' '스텔라네요.' 다시 운전자가 묻는다. '스텔라가 195km로 달리는 거 본 적 있으세요?' '아, 아뇨. 그러게 이상하네요. 대체 무슨 장치를 하신 거죠?'




 

생산 당시 스텔라의 기어는 4단까지만 있었다. 김삼권씨(56)는 이 기어를 5단으로 개조했다. 다른 모든 건 1984년 구입했을 때 그대로다.

김씨는 올해로 25년째 스텔라를 몰고 있다. 계기판 주행거리에는 '501946(km)'라고 찍혀 있다. 50만km를 넘게 달려왔지만 차는 여전히 서울과 부산을 가뿐하게 왕복한다. '옛날에 수리하면서 계기판 숫자가 17만에서 0이 되는 바람에 50만 밖에 안되지만 실제로 주행한 거리는 70만km 가까이 됩니다.'

그의 첫 차는 포니였다. 그 다음은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의 전신)에서 생산한 제미니, 다시 레코드 로얄로 바꿨다가 마지막으로 산 게 스텔라였다.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에서 내려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따라 김씨가 운영하는 순대국밥집으로 향했다.

가게보다 차를 먼저 찾았다. 요즘 차에선 찾아보기 힘든 각 진 스타일의 하얀색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다.

운전석을 들여다 보니 그야말로 '올드 카'다. 운전대 오른쪽에 박혀 있는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크게 들렸다. 라디오 음질은 잡음 하나 없이 선명했다. 크라운사에서 만든 이 라디오 세트는 당시 옵션 가격이 45만원이었다고 한다.

2008년 8월 현재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는 총 1674만 2075대다. 우리나라 승용차의 평균 차령은 7.3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많이 상승한 결과다. 한 차를 25년 동안 탔다면 뭔가 그만의 특별한 관리법이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관심을 많이 가진 것 밖엔 없는 것 같네요. 남들은 차계부를 쓰면서 엔진오일은 언제 교체했고 냉각수는 언제 넣었고 하는 걸 세세히 기록한다고 하는데 전 그런 거 절대 안 씁니다.'

자동차 엔진 오일의 교체 주기는 3000km라고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만 김씨의 생각은 달랐다.

'엔진 오일은 그때그때 엔진 상태에 따라 알맞게 갈아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어요. 엔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1000km 달리고도 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3000km를 넘게 달려도 굳이 갈아줄 필요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김씨에겐 차를 처음 산 순간부터 철저하게 지키는 지론이 하나 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기면 미루지 않고 곧장 카센터로 달려간다는 거다.



'어느 부위가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가야 합니다. '내일 가야지'라고 생각하면 늦습니다. 사람이랑 똑같아요. 아픈 데 놔두면 합병증 생기잖아요. 병을 키우는 거죠.'

김씨는 겨울마다 전국을 누비며 사냥을 한다. 그의 애마는 다른 지프 차량들과 함께 비포장도로도 거침없이 달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워두면 금새 사람들이 몰려든다. '보닛을 열어봐 주시면 안될까요?', '시운전 한 번만 해보게 해주세요'라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25년 된 차를 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부품 조달이다. '집 안 보일러실에 자그마한 창고를 마련했는데 거기에 부품만 50여종을 모아놨습니다. 아마 가격으로 따지면 차 한 대 값은 나갈 거예요.'

김씨는 자동차 운전석 옆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보였다. 차계부는 쓰지 않지만 자동차 부품은 세세하게 그 종류와 수량까지 적어놓고 있었다.

'옛날엔 각 도별로 돌아가면서 엽장이 생겼어요. 사냥하러 가면서 자동차 부품 가게도 들렀죠. 스텔라 부속 있냐고 물으보면 가끔 갖고 있는 데가 있어요. 어떤 주인들은 그냥 가져가라고 해요. 자기는 이제 갖고 있어 봤자 쓸 데도 없다면서.'

김씨는 부품을 구하기 위해 현대그룹 본사의 비서실장에게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한 15년 쯤 전이에요. 부품 하나가 꼭 필요했습니다. 현대에 전화를 걸었죠. '당신들이 만든 차가 지금도 굴러다니고 있는데 부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새로 못 만들어주면 어디 남아 있는 데가 있는지 찾아라도 봐줘야 할 거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3일 뒤에 연락이 오더군요. 서울 성수동 AS센터에 그 부품이 남아 있다고. 근데 이젠 현대 AS센터에 가도 스텔라에 대해선 모르는 것 같아요.

 

최근에 뒷 트렁크 쪽을 도색한 뒤에 현대 스텔라 마크를 안 붙이고 동네 근처의 AS센터에 들어갔더니 정비하는 기사들이 외제차가 들어온다면서 일하다 말고 전부 다 와서 제 차를 보더라고요.'

그만의 독특한 자동차 관리 요령 중 하나는 '인맥 관리'다. '정비소엔 반드시 내 사람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쉽게 가서 물어볼 수 있잖아요. 제가 지금 단골로 다니는 정비소 사장과는 벌써 20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답니다.'

결국 차는 사랑과 관심이다.


김씨는 정비소에 가면 수리를 맡기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킨다. 어떻게 고치는지 보고 배운다. '도크에 차를 올리면 그 밑에 들어가서 윤활유를 바닥에 칠해 놓습니다. 바닥에 녹이 슬 때가 많거든요.

 

가령 과속 방지턱을 잘못 지나가면 자동차 바닥이 심하게 긁힐 때가 있습니다. 카센터에 가서 하체를 점검하는 게 좋습니다. 일단 녹슨 부분을 문질러서 긁어낸 뒤 언더코팅제를 뿌려 두는 게 좋죠.'

김씨는 앞으로 몇 년 더 스텔라를 몰 수 있을까.

'글쎄요. 저한테 차를 팔라는 사람이 있어요. 22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25년 전에 1200만원을 주고 샀죠. 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대신 조만간 차를 완전히 깨끗하게 수리를 할 생각이에요. 썩은 부분은 모두 떼어 내야죠. 제가 죽어도 차는 세상에 남기고 가고 싶단 생각을 가끔 합니다.'

 

< 권영한 기자 scblog.chosun.com/champano>



달인 김삼권씨의 자동차 관리 십계명

 

 1. 내 차는 내가 몬다. 주차 대행이 웬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동차의 주인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생각. 내 차 한 번에 시동 걸 수 있는 사람, 세상에 몇 없을 걸?

 2. 겨울엔 무조건 '주유 가득'. 이건 상식이다. 겨울엔 연료 탱크 내부에 습기 차고 얼 수도 있다. 여름엔 반만 채우지만 겨울이면 무조건 외친다. '아저씨 가득요!'

 3. 작은 부품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마음가짐.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그럼 그걸 만들었던 공장이라도 찾아내는 근성!

 4. 농담 아니다. 2만km를 달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엔진 오일 안 갈아주는 사람도 봤다. 게으른 운전자는 절대 자동차와 오랜 연애를 할 수 없음을 명심할 것.

 5. 자동차의 사소한 기기 이상이나 고장, 미루면 병 된다. 발견 즉시 정비소로 달려가 주는 센스. 감기를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키울 생각은 없겠지?

 6. 사람이 차를 만들지, 차가 사람을 만든 게 아니다. 보닛만 열면 나타나는 현기증 증상, 당신만의 고민은 아니다. 그래도 자동차를 사랑한다면 정비 공부는 필수다.

 7. 잘 키운 정비소 친구 하나, 열 보험 안 부럽다. 정비소에 또래 친구를 만들어 두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뭐든 마음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 좋다.

 8. 운전할 땐 전방주시? No No, 사방경계! 방어운전 습관은 필수. 신호대기 중에도 뭔가 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항상 1단 기어 넣고 출발 대기.

 9. 자동차도 비데가 필요해. 겉만 번지르하면 뭐해. 차체 바닥도 중요하다고. 녹슬 만한 부분은 자주 기름칠 해줘야 한다. 요즘은 코팅제 스프레이도 나오고 편해졌지.

 10.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 법. 비 올 땐 차고에 모셔둔다고? 그래야 쓰나. 비오는 날은 물론 사냥 갈 때도 오프로드를 질주한다고. 차는 강하게 키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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