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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의 내공

희망연속 2019. 9. 13. 22:13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저는 이 말이 채근담(菜根譚)이나 공맹(孔孟)에 나오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으로만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을 2002년 대선 당시 이낙연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이 한 말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한 2002년 10월에 위의 단 3줄짜리 점잖은(?) 논평을 발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도 신문 깨나 읽는 인간으로 자칭하며 살아왔는데, 이낙연 총리에 대해서 사실 별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에 국회의원을 지낸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전남 지사로 재직하다가 국무총리에 오른 후 그의 언행을 보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지식인의 말과 글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 이 총리의 발언이나 행동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원래 국회는 의원들이 마이크 잡고 폼잡는 자리라 당연히 '갑'이고, 답변하는 사람은 그저 시간만 때우고 벗어나려는 위치여서 '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가 답변한 후 부터는 묘한 흐름이 느껴지고 있답니다. 답변하는 이 총리의 내공에 오히려 질문자가 주눅든다고 말이죠.

 




이총리의 답변을 보면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도 놀랍지만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순발력이 혀를 내두를만 합니다.


제가 가장 감탄했던 적은 작년 10월 정기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안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방문할 당시 태극기가 없었다”는 질의를 했고, 이 총리는 이에 대해 “프로토콜(규약)은 초청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도리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측에) 방문한다면 서울에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사소한 사안조차 대단히 민감하게 다뤄지는, 남북 외교의 특수성을 환기시키는 탁월한 답변이었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답중에 명답이었습니다.


국회 의사규칙에 의하면 국회의원 질문서는 질문예정자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 각 부처로 이송한 다음 질문이 이루어지기 최소 10일 전까지 답변서를 질문자에게 보내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총리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질문당일 아침에야 질문서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총리의 방어력을 보면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이총리의 문장력을 가늠케 해주는 일화가 더 있습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문안을 취임사 준비위원회에서 작성했는데 말과 글에 일가견이 있다는 노대통령의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노대통령은 취임사를 이총리(당시 대변인)에게 수정을 부탁했고, 노대통령이 토씨 하나 안고치고 그대로 취임사로 읽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취임사를 당시 이총리가 얼마만큼 고쳤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실력을 짐작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국무총리의 말과 글이 이토록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온전히 그의 내공 덕분일 터, 앞으로 어떤 화제를 불러 모을지 유심히 지켜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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