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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먹거리

봉천동 장군집 '사선막걸리와 푸짐한 안주'

희망연속 2018. 7. 16. 16:59

 

 

 

 



 
 

시댁이나 친정에 갈 때면 미리 크게 심호흡을 한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모두 손이 크신지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칼하고 매운 음식을 잘 만드시는 시어머니는 술 잘 마시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육해공 안주를 내오신다.

 

커다란 찜통엔 갈비찜, 큰 접시엔 수산시장에서 공수해온 튼실한 장어, 냄비엔 보기만 해도 매워 보이는 닭볶음탕이 한가득. “어머님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하면 “자식들 든든하게 먹이고픈 게 엄마 마음”이라며 웃으신다.

 

친정어머니도 못지않다. 고기를 든든하게 먹이겠다고 불고기부터 로스구이, 삼겹살까지 온갖 고기를 끊임없이 구워낸다. 딸과 사위가 이제는 진짜 못 먹겠다고 항복선언을 해도 소용없다. 집에만 가면 몸무게가 2~3kg 늘어나는 것 같다.

이런 호사를 자주 누리고 싶지만 일상에 쫓기다 보니 양가 부모님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엄마의 정을 느끼고 싶을 때, 푸짐한 한 상 차림이 그리울 때, 이곳을 찾는다.

봉천동에 위치한 이곳의 옥호는 장군집.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독특한 이름이다.

 

이 집을 소개하면 다들 “뭐 파는 곳이에요?”라고 되묻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막 퍼주는 싸고 양 많은 서울 막걸리 맛집’. 이 집을 설명하는 데 이만한 문구가 있을까? 



 

 

 

 

 

 

한 번만 가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다. 대표 메뉴의 이름은 ‘기본 한 상’. 주문하면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안주가 푸짐하게 깔린다.

 

처음 갔을 땐 계속 나오는 메뉴를 보고 “이걸 다 주시는 거에요?”라고 놀란 토끼 눈이 됐다.

 

그런데 가격은 겨우 2만5000원. 심지어 막걸리 3병이 포함된 가격이다. ‘이렇게 장사하면 남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다.

어느 날 최영자(64) 사장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 전주에서 예식장 등을 운영했던 그는 IMF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접었다. 어떻게든 자식들 먹여 살리겠다고 서울로 상경했고 봉천동에 자리를 잡았다. 봉천시장의 한 백반집에서 일을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에 근처 ‘장군집’이라는 이름의 돼지 부속고깃집 사장이 내놓은 가게를 인수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13년째 이어왔다.

인수 당시에는 돼지 부속고기를 그대로 팔았다. 가끔 막걸리를 찾는 손님들이 있어 안주를 조금씩 공짜로 내어 주었다고. 그러다 막걸리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면서 안주가 하나 둘씩 늘어났다.

 

자연스레 막걸리 주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돼지 부속고기는 접었다. 2~3종에 불과하던 안주의 수도 점점 늘어 지금은 15종이다.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는 고정으로, 매일 아침 시장을 돌아보며 구입한 제철 재료 1~2가지씩을 더한다. 

 



 

이날 나온 메뉴를 한번 적어봤다. 두부 김치·전·도토리묵·번데기·소라·돼지 머릿고기·메추리알 장조림·홍어회·코다리찜·돼지껍데기 무침·꽃게 양념장·계란찜·데친 브로컬리 등 갖은 채소 안주…. 여기에 제철 안주로 병어회와 왕꼬막이 나왔다.

 

이 많은 음식을 매일 준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이렇게 해서 이 가격이면 남는 건 있으세요?”라고 여쭸더니 사장님은 “인건비는 나오겄죠?”라며 웃는다.

음식을 한 가득 차려내는 건 전주식 한 상 차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식사할 때 반찬 한 가지 두고 먹으면 밥이 안 들어가요. 거하게 차려놓고 먹고 싶은 거 먹어야 밥이 쑥쑥 들어가는 거지.”

이런 마음이 장사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푸짐하게 차려놔야 대접하는 기분이 들고, 손님들이 신나게 먹고 더 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기쁠 수 없다고. 

 

 

                                                                                              

 



참. 막걸리 설명도 빼놓을 수 없겠다. 여기서는 서울에서 쉽기 찾아보기 힘든 전주의 ‘사선 막걸리’가 나온다.

 

평소 사장님은 막걸리만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파서 고생했는데, 이 막걸리는 신기하게도 뒤끝이 없고 빨리 깼다고. 여러 번 테스트를 해보고 팔기 시작했는데, 한 주에 최고 10박스를 판 적도 있단다.

 

적당한 단맛과 술술 넘어가는 목 넘김. 다양한 안주와 함께 편하게 즐기기 좋은 막걸리다.

장군집은 쉬는 날이 없다. 일요일이라도 쉬셔야 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더니, “멀리서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일요일엔 특히 관악산에서 배낭 매고 한참을 걸어서 오는 분들도 있는데, 먼길 발걸음 생각하면 쉴 수가 없어요. 허탕치고 가면 미안하잖아” 라고 말한다.

건강은 괜찮으실까. 걱정되어 넌지시 여쭈었더니 아니나다를까 고혈압·당뇨·심혈관 질환 등 온갖 병을 다 안고 계셨다.

 

작년엔 특히 힘들어서 가게를 접을까도 생각했다고. “그렇게 몸 아끼지 않고 일하시는데, 돈을 좀 버셔야 할 텐데요” 했더니,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느라 아직도 월세방에 사신단다. 아,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장님께 하고 팠던 말을 지면을 통해 내지르련다. “사장님 부디 음식 가격 좀 올리시고, 돈 많이 버셔서 얼른 집 장만하세요! 그리고 손님 생각만 하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 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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