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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안과 밖

이케아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희망연속 2018. 4. 14. 11:33


 

 

[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칼럼니스트]  정주영현대그룹 회장은 평소 옷차림도 후줄근한데다 신고 있는 구두도 먼지를 대충 턴 듯 윤기 없이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게 주위사람들 이야기다.

 

세계 최대 조립가구회사 이케아의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에 대한 전기를 읽고 난 느낌도 바로 이와 비슷했다.

 

그는 스위스 최고의 갑부이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이만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린고비다. 그는 15년이나 된 낡은 중고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걸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정회장과 오십보백보다. 비행기도 가급적 값싼 것을 타고 비즈니스석이니 퍼스트클래스석이니 하는 고급 자리에는 앉아 본 적이 없다.

 

제일 싼 이코노미석을 타고 너털웃음을 날린다. 호텔도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면서 절약한다. 사무실에서는 작업복 셔츠를 입고 냅킨을 메모지로 활용하고 서류도 비닐 봉투에 넣고 다닌다. 쇼핑하는 방법도 얄미울 정도다.

 

대형슈퍼마켓에서 주말이나 특별할인 행사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물건만 골라 구입한다.

 

스위스의 그의 집도 웅장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서민적 집인데다 가구 역시 자신이 만든 조립식 이케아 가구로 장식해 놓았다.

 

사람들은 그가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 스위스에 사는 것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라며 괜한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이 나를 인색하다고 말하지만 난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절약하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캄프라드는 이케아 직원들에게 입만 떼면 절약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 회사 직원들은 이면지 사용해야한다는 식의 강요를 받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래? 그게 무슨 문제인가? 모든 직원들이 절약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절약하도록 만들기 위해 내 자신부터 솔선수범한다. 그래서 나도 이면지를 사용한다"고 당당하게 응수했다.

 

캄프라드가 이케아(IKEA)를 세운 것은 17세 때인 1943년이다. 학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자 아버지가 격려금을 줬고 그는 이 돈으로 이케아를 설립했다. IKEA는 자신의 이름(Ingvar Kamprad)과 자라난 농장(Elmtaryd),지역(Agunnaryd)의 머리 글자를 따서 지었다.

 

이케아는 구멍가게 같은 것이었다. 볼펜등 문방구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잡동사니가 주로 파는 물건이었다. 캄프라드는 4-5살 때 강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있었을 만큼 장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 그는 우편 판매를 위주로 첫 삽을 퍼 올렸다.

 

그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고객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원하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는 천성적으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며 새롭고 낯선 것들에 대한 탐구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 보다 빨리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가 25세 되는 해. 스웨덴은 복지정책에 사활을 걸었다. 주택 1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이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였다. 어느 날 그는 어떤 사람이 차에 테이블을 실을 수 없자 다리를 뜯어 차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그의 머리는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사람들이 값싸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립식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나 스웨덴이나 가구는 고가이기 때문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의 조립식 가구는 우선 운송하기가 편했으며 좁은 공간에서도 보관이 쉬웠다. 가구는 내놓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정책을 폈다. 값싸게 많이 팔면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고 그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믿고 대형 매장을 잇따라 연 것이 성공의 포인트였다.

 

고객들에게 배포하는 상품 카탈로그는 연간 16000만부로 유럽에서는 '이케아 카탈로그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캄프라드는 자신의 구두쇠 경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케아 그룹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절약하고 절약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CEO가 그러하듯 그도 절약해서 번 돈을 그보다 더 가치있는 일에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스위스 로잔 예술학교에 기부금을 내놓는 가하면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이케아는 스웨덴등 서유럽국가에서 자선을 많이 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또 환경문제나 자원재활용에도 관심이 많아 가구를 생산할 때 재활용 자재를 사용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런 운동을 확대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그는 이케아의 최종 목적은 이윤 추구에 있지 않으며 기업념인 소비자에게 싸고 좋은 물건을 제공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결국, ’이익은 소비자에게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제공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 된다는 말이다. 이익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다음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자원이다.

 

 

캄프라드의 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매일 더 나은 삶을 꾸리도록 도와준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A better everyday life’ 라는 기업 비전을 담은 슬로건으로 꾸준하게 경영에 관철되고 있다.

 

캄프라드의 삶의 철학은 절약으로 풍성한 것을 찾는데 있었다.

 

인간과 자원에 대한 애정, 끈기와 집념, 일과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들이 믹싱된 이러한 철학은 그의 집안에서 물러 받은 유전적 기질과 어린시절 보고 겪었던 성장배경에서 유래한다.

 

그가 자라던 1930년대는 대공황기였다스웨덴의 한적한 산골에도 이 태풍은 비껴가지 않았다. 초근목피로 생활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물건을 아끼고 열심히 노력하는 근면한 정신을 길렀다. 몸으로 체득된 이런 습관은 결국 이케아의 경영과 철학에 반영된다.

 

사람들의 가치는 그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돈을 중시하는가하면 명예나 사랑을 높은 덕목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눈앞에 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하곤 한다.

 

그러나 캄프라드는 절약을 통해 돈을 잡아 쥐는 요령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케아라는 이미지는 신선하다. 스웨덴국기를 연상시키는 심볼은 도전적이다. ‘모던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전차의 깃발처럼 나부끼게 하고 현대적인 감각에다 기능적이며 사람의 편익을 우선하는 가구는 사람들에게 보다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인간본위의 기능적 조합은 고객들이 직접 가구를 조립할 수 있는 D.I.Y(Do it Yourself) 가구 형태에도 있다. 이 방식은 손님의 이익뿐 아니라 회사도 조립 공정 단계를 줄여 원가 절감 효과를 창출해 냈으며 내손으로 만든다라는 색다른 체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별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에 필요한 모든 가구 및 소품을 1만 여 종의 제품 중에서 그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 매장 여기저기에는 카탈로그와 작은 연필과 메모지, 길이와 높이 등을 잴 수 있는 줄자를 구비해놓고 고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가구 모델을 선택하면, 바로 창고에서 가져다주는 원스텝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세계가구시장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지만 이케아의 플랫 패키지 (Flat-Package) 방식 또한 시대를 한 걸음 앞서 나간 아이디어였다. 이 방식은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각 부분을 조립하지 않은 상태로 박스에 넣어 포장함으로써 완성품보다 부피가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부피 절감 및 운송비와 인건비의 절감은 고객에게 보다 향상된 품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수 있는 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케아는 가구점을 여행객이 관광을 즐기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투어를 개발한 최초의 가구업체이기도 하다. 캄프라드는 가구를 사러 시골 혹은 다른 먼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소비하며 매장까지 오는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심 끝에 고객들이 이케아에 방문하는 일을 즐거워 할 방법을 찾았다. 단순히 가구점을 찾는 이상의 체험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매장 안에 레스토랑과 어린이를 위한 놀이공간을 만들어 이케아 방문이 가족 나들이가 되도록 바꾸어 놓았다.

 

이 개념은 오늘날 국내 음식점까지 파고들 정도로 좋은 기획아이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나아가 탁아소를 비롯하여 어린이를 위한 각종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어릿광대나 이벤트 복장을 한 어른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어린이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레스토랑을 만들어 싼 가격에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따로 도시락을 준비할 필요없이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뿐 아니다 인근 주유소와 협약하여 우수 고객에게는 휘발유 가격을 할인해주는 정책도 마련하였다.

 

가구는 살아있다라는 이케아가구의 소구점은 바로 잉그바르 캄프라드의 기업경영정신을 한마디로 농축해 놓은 것이다. 절약과 근면, 인간본위의 3위일체가 오늘날 이케아를 만든 것이다.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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