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명지대 강경대 열사 기념비 본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입구앞은 비좁은 왕복 2차선 도로때문에 항상 차와 사람이 밀린다.
정문에서 좌측으로 담장이 이어져 있는데 20m 정도에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하나 관심주는 눈길없이 정말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
요즘 젊은이들은 알기나 할까.
바로 강경대 열사 기념비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인터넷 지식검색에서 퍼온 다음 내용으로 대체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와 같이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고귀한 삶이 자꾸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그와같은 흔적지우기가 일상화되고 있음에도 고단한 삶에 지친 국민들의 관심은 자꾸 멀어져 갈뿐.
1990년 2월 휘문고 졸업
1991년 3월 명지대 경제학과에 입학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난타로 인해 심장막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
1991년 5월 14일 장례식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1991년 5월 26일 장례를 치른 후 망월동에 잠듬
91년 4월 24일 상명여대의 학자집회를 지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박광철 총학생회장이 불법연행되자, 명지대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압하였고, 학생들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4월 26일 학원 자주화 완전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경찰과 대치하던 강경대 동지는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해 교내로 진입하여 골목에까지 경찰을 투입하여 무력진압을 하는 무자비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의해 집단 구타당하여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운명하였다.
동지는 아침에 학교에 오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학교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일찍 돌아오겠습니다. 경대올림" 이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겨두고 산화하였다.
문익환 목사의 추모시가 가슴을 때린다.
'인물의 안과 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보적 참 지식인 한완상 전 부총리 (0) | 2017.01.06 |
---|---|
바둑계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 (0) | 2015.08.02 |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새롭게 보인다 (0) | 2015.03.11 |
해외학계를 주름잡는 한국인 (0) | 2015.03.04 |
김대중의 성공과 실패 (중앙선데이) (0) | 201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