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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세상

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

희망연속 2012. 7. 18. 11:43

바야흐로 대선시즌이다.

 

싫건 좋건 우리는 몇달후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된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해달라는 사실 하나에 목을 맸던 시절이 불과 이십여년전인데 지금은 누가되든 달라질게 뭐있냐 하는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말 많은 변화와 발전 혹은 정체와 후퇴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한다. 우리나라는 참 깊이가 없는 사회다.

 

금년말, 누군가 대통령으로 뽑히겠지만...... 난 안철수나 손학규가 좋다.

 

안철수는 아직 출마선언을 정식으로 하지 않았으니 현재로서는 손학규가 가장 나아 보인다.  

 

왜냐고?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선 다음 글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공감]‘저녁이 있는 삶’ (경향신문 칼럼, 2012년 7월 17일)

현재 유력 대선후보는 아니지만,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은 슬로건 자체로는 1등감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박근혜),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김두관), ‘마음껏! 대한민국’(김문수),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정세균), ‘걱정 없는 나라’(임태희) 등 여전히 ‘나라’와 ‘국가’가 들어가는 슬로건에 비하면 두드러지게 아름답고, 같은 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절치부심 뒤늦게 발표한 ‘사람이 먼저다’(문재인) 역시 세련미와 구체성에서 뒤떨어진다.

                                      

 

 

‘저녁이 있는 삶’의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손학규 고문 측도 몰랐다고 한다. 지난달 대선 출마선언 당시 메인 슬로건은 ‘정의로운 민생정부, 함께 잘사는 나라’였다. 그런데 모범답안 같은 이 슬로건이 반응을 얻지 못하자 지난해 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노동정책을 가다듬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방송용 멘트인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 휴가가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다시 불려나왔다.

 

국내 최고를 자처하는 홍보전문가들이 투입된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저녁이 있는 삶’은 방송원고를 담당한 비서관의 작품이라고 한다.

혹자는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고 여가와 일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삶의 구조를 바꾸자는 ‘저녁이 있는 삶’의 내용이 도시 중산층 직장인들이나 바랄 법한, 철저히 계급적인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그렇기도 하다. 저녁뿐 아니라 ‘아침과 점심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미취업자나 실업자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일 것이며, 야근과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나 늦게까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꿈같은 소리다.

돌아보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의 슬로건은 ‘국민성공시대’였다. 이념대립을 버리고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들면서 국민 개개인이 더욱 부자가 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공한 ‘국민’은 국가라는 공동체에 속한 전체 국민이 아니라 선택 받은 일부 국민이었다.

 

이번 대선의 슬로건이 국민이라는 집합명사 대신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는 국가의 모습을 반영한 건 이런 상황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내 꿈이 이루어지고’ ‘내게 힘이 되고’ ‘편안하고’ ‘걱정 없는’ 나라는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저녁이 있는 삶’이 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건 인간의 귀소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공적 영역에서 힘겹게 일하더라도 저녁에는 느슨하고 선한 마음을 품은 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을 보겠지만(보건복지부의 최근 조사는 60대 퇴직남성의 하루 평균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4시간17분이라고 알려준다) 점차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고,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겠다.

핵심은 탈물질주의 사회를 향해 한발 내딛는 것이다. ‘탈물질주의’를 주창한 로널드 잉글하트는 서구 정치문화의 변동에서 기본적인 가치의 변화를 주목했다. 돈·경제·물질에 대한 욕구 다음에는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같은 탈물질적 욕구가 분출하는데 이는 좌우 이념과 직접 관련이 없다.

 

비정규직, 미취업과 실업, 양극화 등 일자리 및 복지와 관련된 현 단계의 문제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탈물질적 사고의 확산을 통해 해결된다고 할 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일종의 은근한 미끼다.

이 슬로건은 ‘문학적 수사’라고 폄훼되곤 한다. 그러나 ‘문학적’이란 말은 ‘환상적’인 것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결핍을 드러내는 ‘증상적’인 것이면서 미래의 방향을 가늠하는 ‘유토피아적’인 것이어서 미래의 지도자가 되려는 대선 후보가 문학적 수사를 사용하는 건 앞으로 더욱 확산되어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한윤정 |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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