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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늘어나는 서울대의 고시생들

희망연속 2010. 7. 27. 17:09

:: 갈수록 늘어나는 서울대의 고시생들

전진원 기자 / comjjw@snu.ac.kr

 


 

지난 2월,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학기 중 못지않게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PSAT기출문제집’이나 ‘미시경제학’, ‘행정법특강’ 혹은 ‘민법강의’등의 소위 ‘고시서적’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등고시나 사법시험 아니면 다른 종류의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학내 커뮤니티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는 방학 동안 중도에서 같은 고시 과목을 공부하던 사람들끼리 건승을 비는 글도 올라온다.

 

방학에도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로 붐비는 그곳, 2009년 서울대학교의 한 단면이다.

 

 

서울대? 서울고시전문대학?!


2008년 10월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에게 제출된 ‘서울대 최근 5년간 미취업자 중 고시준비생 수’에 따르면 2008년에 졸업한 학생 4천267명 중 29%인 1천272명이 미취업자다.

 

그 중에서도 40%에 달하는 472명의 학생이 ‘고시준비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취업하지 못한 서울대생 10명 중 4명은 고시를 준비하면서 신림동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법대, 사범대를 제외하고는 사회대 미취업 졸업생의 46%가 고시생이다. 농생대 역시 미취업 졸업생 39%가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생활대, 인문대, 공대의 미취업 졸업생 중 각각 37%, 28%, 25%가 고시생이다. 하지만 이 통계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다.

 

때문에 재학생의 고시생 비율은 알 수 없다. 경력개발센터의 한 담당자는 “고시생에 대한 통계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재학생을 대상으로 고시생의 비율에 관한 자료를 학교차원에서 수집한 적이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중앙도서관 열람실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서관, 법대5층 열람실을 가득 매운 고시관련서적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서울대의 고시생 비율이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시생이 ‘서울대생의 절반’이라는, 쉽게 부인할 수도 없는 애매한 말이 떠돌면서 서울대는 ‘고시전문대학’의 이미지를 갖춰왔다.

 

특히 경제적으로 외환위기 같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던 90년대를 기점으로 서울대생들이 ‘안정성’을 좇아 고시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

 

007년 12월, <서울대사람들>이 ‘서울대의 고시열풍’이란 주제로 개최한 대담회에서 외무고시를 합격한 졸업생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사기업의 고용안정성이 약해져 서울대생들이 고시에 뛰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의 고시전문대학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서울대 근처 대학동(구 신림9동)도 ‘고시촌’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작년, 관악구청이 서울대 주변 대학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서울대 주변, 신림9동’의 대표적 사항을 ‘고시촌’이라고 답변한 사람이 42.9%에 달했다.

 

일명 ‘신림동고시촌’은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80년대 들어 신림9동이 신림2동으로부터 분리됐고 ‘녹두거리’가 발전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 고시촌으로서의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현재 신림동 고시촌은 고시학원 및 고시원이 255개 입지한 국내 최대규모의 고시촌이 됐다.

 

대학동은 서울대생의 주거지역임과 동시에 고시촌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고시 하는 서울대생, 그들 혹은 그 이상의 문제


고시생이 늘어나면서 고시생의 심리에 관한 상담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 김지은 상담전문위원은 “10년 전에 비해 고시생의 숫자가 늘어난 것 같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 상담위원은 고시생의 경우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주원인으로 정신건강 이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김 상담위원은 “고시는 경쟁률도 높고 일생이 걸린 것이라서 불안감이 크다.

 

거듭해서 떨어질 경우 심리적 부담감이 더욱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결국엔 “‘공포’수준으로 번져서 대생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시생 A(정치 06) 씨도 “앞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크다”며 “공부기간 동안 울면서 잠든 적도 많았고 돌이켜봐도 힘든 기억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많은 서울대생이 고시에 매진하는 현상은 개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만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많은 서울대생이 고시에 매달리면서 사회적 인력 낭비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있다.

 

최종원 행정대학원장은 “자기 적성에 고시가 맞는지도 모르는 채 고시를 시작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강창우 인문대 부학장도 “국가적으로 보더라도 인력낭비”라며 “서울대생들이 창조적인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 발전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고시를 준비하는 서울대생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고시생 B(외교 06) 씨는 “단지 고시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서울대 개개의 구성원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A 씨도 “서울대생들이 고시를 많이 선택하는 건 그만큼 성취하고 싶은 목표나 미래에 대한 포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충분한 고민 끝에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준구 교수(경제학부)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학생들이 고시를 치는 것은 얼마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본다”며 “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여타 진로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 털어놓기도 했다.

 

 

고시반 도입에 대해서는 “글쎄”


서울대 구성원의 상당 수가 고시생이지만 고시생에 대한 학교차원의 대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생원 김지은 상담전문위원은 “고시생들만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생원 차원에서 고시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타 대학의 경우 ‘고시반’을 운영하면서 학교 차원에서 고시 준비를 장려한다. 고시반은 고시관련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고시생들에 대한 복지도 제공된다.

 

한양대의 경우 법대고시반에 헬스시설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성균관대의 경우는 행정고시, 사법시험, 공인회계사시험 등 고시 종류에 따라 각각의 고시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연세대의 경우 법현학사 등 고시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담당 교수도 임명해 고시반을 관리하고 있다. 연세대 고시반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합격률도 높다”며 고시반의 효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학내 여론은 고시반을 운영해 고시생들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학내 많은 교수들은 고시반 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장재성 학생처장은 “고시생을 위한 지원이라는 말 자체가 서울대 내에서는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장 처장은 “만일 고시생에 대한 지원이 있더라도 단과대 차원에서 고려해야지 학교 전체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어 강창우 인문대 부학장도 “서울대가 혹은 인문대가 나서서 고시반을 운영하는 것은 인재활용 측면에서 맞지 않는 일이다”고 비판했다.

이준구 교수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서울대 마저 고시반을 만들면 우리나라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시반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교육기관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종원 행정대학원장 역시 “고시생이라해서 특별취급을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고시반 보다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스터디 모임의 활성화와 선후배간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학생들 역시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박수근(경영 04) 씨는 “실제로 고시반을 운영하지 않아도 각종 고시에서 합격자의 상당 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며 “굳이 고시반을 따로 운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학명(서양사 05) 씨도 “고시반의 운영은 자칫하면 고시로의 쏠림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씨는 “타 대학처럼 고시생 이외 학생들과의 차별대우 논란이 발생할 것”과 “고시반이라는 한정된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이 생길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늘어나는 서울대생의 고시, 막을 대안은 없어


서울대의 고시생들에 대한 조사나 특별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지만, 학생들이 고시를 쉽게 택하는 현실을 방지할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일부 단과대에서는 단과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강창우 인문대 부학장은 인문대생활문화원을 예로 들며 인문대 차원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강 부학장은 “적성검사 같은 심리상담과 경력개발의 두 가지 측면에서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부학장은 이외에도 인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외부 전문가 등을 초청해 강연을 하는 등의 사업도 소개했다.

그러나 인문대생 김학명(서양사 05) 씨는 강 부학장이 사례로 든 사업들에 대해 “참여해본 적이 없고, 주변에서 참여한다는 사람도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멘토링 프로그램에 대해 “인문대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치고는 인원 제한이 너무 적다”는 점도 지적했다.

서울대생이 고시 이외의 대안을 찾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 ‘교수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원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최종원 행정대학원장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준구 교수는 ‘교수들이 학문에 대한 열정을 돋워줘야 한다’는 등의 교수의 역할 강조에 대해 “말은 쉽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측면에서의 해결을 요구하는 의견도 있다. 이준구 교수는 “고시를 치게하는 사회 유인이 문제”라며 민간 부분의 안정성이 확대되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에 대한 이 교수의 반응은 “원론적인 답은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답은 없다”이다.

 

특히 로스쿨을 통해 사법시험 등을 대체하는 것을 찬성했던 이 교수는 “로스쿨 조차 대학교육을 로스쿨 입시를 위한 것으로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며 행정고시나 외무고시도 대체할 대안들이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시에 관한 현실적인 대책은 나오기 어렵다"고 예측했다.

원문은 http://www.snujn.com/article.php?id=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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