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서울대생의 수준 변화 본문

올 패스

서울대생의 수준 변화

희망연속 2010. 7. 27. 17:04

제 목 (최규호 변호사가 끈) 서울대생 수준 변화


역시 최변호사님이 정확하게 지적하셨네요.






서울대생들의 수준 변화

글쓴이: 최규호 변호사 조회수 : 1571 08.07.16 08:58

http://cafe.daum.net/pass50/7Gk2/83


1. 과거 서울대

( 이 글은 주로 이과 위주로 썼다. 이과에 국한된 얘기로 보면 된다)

예전 서울대는 정말 톱이었다. 전국에서 5천등 이내에 들어야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상 타 대학보다 위에 있었고 그것이 서열화되어 있었다. 당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물리나 화학 수학 등 순수학문, 전자공학, 제어계측 등의 공학으로 진출을 하였고, 서울이나 일부 세상에 밝은 아이들이 의대에 입학을 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수재들은 세상에 어두워 공대에 많이 진학을 했다.



2. 공대 내의 순위 변화

공대의 역사를 보면 60년대까지는 전자공업이 없었고, 우리나라의 유일한 기간산업은 화학이었다. 충주비료공장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화공과가 공대 톱이었다.

 

항공과 선배들이 당시 다닐 때 항공과 다닌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화공과 다닌다고 알아듣는 경우에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경우가 있다고 한다. 화공의 인기는 그정도였다.

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불면서 건축이 톱이 되었다.

80년대 들면서 전자산업의 발달로 전자공학이 톱이 되었고 그 추세는 쭈욱 이어져오고 있다.(90년대 중반 전문자유직의 붐으로 건축이 잠시 톱이 됐던 적이 있다) 이상이 공대서열이다.


이런 천재들이 서울대 이공계에 몰리면서 우리나라는 조선이나 자동차나 전자나 세계 톱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적 능력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공학도들의 수준은 세계 최고다.

 

다만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거나 국가 과학기술 정책이 그 능력을 못따라가는 것이다. 70년대 박정희가 유도탄 개발을 시작하면서 4년만에 시험성공한 사실이 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성과다.

 

그러나 전두환이 그 모든 자료와 인원을 해산시켜버려 그 뒤 미사일개발은 다시 시작해야 했고 그 수준까지 다시 올라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식이다.

자연대 물리학과는 중고등학생들의 로망이었다. 과학자가 되고싶은 아이들은 그 기본인 물리학을 열망하게 된다. 학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과는 공대 톱과 항상 같거나 더 높았었다. 의대는 실제 성적은 어땠는지 모르지만(내가 의대에 관심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뽑는 인원이 190명으로 많기도 했고, 실제 체감 순위는 그렇게 높아보이지 않았다.

 

전자 40명, 제계 40명, 항공 30명, 물리 60명 등 이공계 톱은 뽑는 인원이 적어 더 어렵게 느껴찐 감이 있다.



내가 들어간 89년만해도 타 대학 의대는 모두 서울공대 중하위권 이하였다. 원광대 한의대는 인하공대 수준이었고, 기타 치대, 한의대 역시 성적 수준은 매우 낮았다.

 

내가 졸업한 충주고에서 전교 1등이 서울공대 갔다면 전교 50등 정도가 지방대 의대에 가는 셈이다. 전교 1등과 전교 50등의 수준 차이는 매우 크다.



3. 서울대 법대와 경제학과

문과의 경우 법대와 상대를 비교할 때 지금은 당연 설법이 설상보다 높지만 과거에는 반대였다. 과거에는 사시 합격 정원이 수 십명 혹은 8명을 뽑은 적도 있을 정도로 적었다.

 

설법에 들어가도 사시 합격못하면 도루묵이다. 대안으로 행시가 있는데 행시는 경제학과가 훨씬 유리했다.

 

또 장관 17명 중 사시 출신은 법무부 장관 1자리이지만 나머지 16개는 행시출신이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시 못붙을 바에야 경제과 가서 행시보는 것이 훨씬 낳았고 그래서 경제학과가 법대보다 점수가 높았다.

 

그러다가 사시 정원이 늘게 되면서 법대가 역전을 하게된다. 지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경제과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하다. 정운찬이나 조순 세대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학벌에 있어 가장 큰 오해와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과거 서울대 경제과 출신들이 아닐까 싶다.



4. 서울대의 약화

서울대와 타대의 순위 관계는 90년대 수능이 들어서면서 급변한다. 수능과 본고사가 시행되었는데 연고대에서는 본고사 없이 특차로 뽑는 전형을 실시했다.

 

서울대는 특차를 시행하지 않고 본고사만을 강행했다. 우수한 아이들은 수학문제의 풀이과정까지 써야하는, 영어의 경우 영작까지 해야하는, 매우 고난이도의 본고사 시험을 두려워했다.

 

나도 본고사 과외를 해봤지만 영작 등에 있어 참으로 공부하기 버거운 대상이었다. 많은 영민한, 수능에는 뛰어나지만 본고사는 부담스런 아이들이 연고대 특차로 대거 지원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안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 네명도 모두 연고대로 갔다. 수능을 잘 치는 아이가 머리가 좋고 문제 해결능력이 우수하다. 암기나 내신에서 뛰어난 아이보다 한 수 위다.

 

그런 수능에 특출난 아이들이 대거 안전하게 연고대로 갔고, 나머지 좀 더 용기있고 우직한 아이들이 서울대 본고사를 통해 서울대로 갔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는 상당히 많은 인재들을 놓쳤고 서울대와 연고대와의 차이는 급격히 좁혀지게 된다.



최근 사시합격자수에서 고대나 연대, 이대 등의 서울대에 근접할 정도로 따라오고 판검사 임용이나 연수원 성적에 있어서도 이제는 서울대에 비교가능할 정도로 올라와있다.

 

실제 그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고 서울대, 서울법대와 비교해도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거나 일부 학생들은 더 뛰어나다.

 

이런 현상은 바로 90년대 특차로 좋은 아이들이 연고대로 갔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서울대가 본고사를 고집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는데, 현실은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그러기를 7-8년 하다가 서울대도 특차를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대의 그러한 굼뜬, 시대 상황판단에 대한 어두움은 서울대학생들의 수준을 급격히 저하시킨 셈이 되었다.

 

서울대가 특차를 뽑지 않았던 기간의 서울대와 연고대의 차이는 나머지 기간의 그 차이와 매우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그 기간 입학자들이 지금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고, 그들간의 능력 경쟁은 매우 볼만한 싸움이 되고 있다.



5. 전문자유직 및 의치한의 부상

9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혁명이 일어난다.

 

95년경에 전문자유직 붐이 불기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대기업이나 은행원이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돈에 대한 가치가 명예보다 높아지고, 의사 등 전문직이 얼마나 버는지 국민들이 알게되자 전문자유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 국민들은 의사가 얼마나 버는지 몰랐다. 그런데 정말로 하루에 서울 집한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70년대에 돈을 벌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되자, 이건 아니다 싶어 의대 열풍이 불게 된다.



95년 이후 의대, 치대, 한의대 열풍이 분다. 나중에는 약대마저 치솟는다. 서울공대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대로 편입하거나 재입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울대 내에서 의대가 톱을 기록하더니 나중에는 서울의대보다 경희대 한의대가 더 높아지는, 경희대 한의대가 전국 톱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한의대의 그러한 특수성은 공대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수능을 다시 봐서 한의대로 몰리는 경향이 원인 같다. 나이 많아 의대 들어가면 가서 고생하고(폭행당하고 욕먹고 등등) 적응 못할 것 같고 한의대는 그런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또한 한의사의 수입이 의사보다 많을 것이라는 믿음도 작용한다. 일에 대한 부담도 없고. 아뭏튼 한의대에 대한 이공계 학생들의 열망은 실로 대단했다.

 

(이제는 한의사해도 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일부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경우가 많다.)



6. 지금 서울자공대의 수준

지금 서울자공대 수준을 말하자면 전국 모든 의치한보다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치한 전국 정원이 의대 3,000명, 치대 한의대 각 7-800명 수준이므로 모두 4,500명 가량이다. 즉 예전같으면 전국 5,000등 안에 들어야 서울자공대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국 5,000등 이하만 서울자공대에 들어오게 된 셈이다.

 

전국 5,000등 이하라면 과거같으면 연고대 수준 이하였다. 다시 말하면 연고대 갈 사람들이 서울대에 지금 들어오고 있고 서울대에 갈 사람들이 전국 의치한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연고대 수준은 더 내려갔다고 봐야한다.

 

의치한을 제외하고. 의치한이 데려가는 인재는 거의 싹슬이 수준이다. 의치한에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서울자공대를 지원하는 경우는 이제 없다고 봐야 한다.



이래서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전국 5,000등 이하 사람들로 서울자공대가 구성되어서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없다.

 

일부 과고 졸업해서 과기대 가는 경우는 있으나 그 수가 미미하고, 그들 역시 나중에 다시 의치전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7. 의치한과 우리나라 과학기술 고사

지금 의치한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 서울 자공대에 들어오는 수준의 인물들이 연구를 해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최고들이 그래도 일부 있어야 하는데 분위기는 그것도 안되고 있다. 인재들이 의치한으로 몰리는 것은 수입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치과의사들 페이닥터가 평균 1-2천을 받는다. 여자라도 5백은 받는다. 개

 

업하면 한달에 수천만원 버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 역시 지방 정형외과 페이닥터는 월 2천을 받는다. 이 금액은 모두 세후이며 지갑에 들어오는 돈 기준이다.

 

제약사가 주는 리베이트 역시 상당하다. 내 친구는 서울대 3수끝에 포기하고 지방대 의대갔고 정신과 전문의 딴 다음에 군대를 갔는데 보건소나 군부대도 아닌 일반 개인 병원에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월 800을 임금으로 받았다. 그것이 과연 군복무인가 의심스러웠지만 국방부가 그대로 시킨 것이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그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전교 1등을 할때 그 친구는 전교 50위 아래였다.

 

또 한 친구는 처음부터 지방대 의대를 목표로 했고 입학을 했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서 지방에서 개업을 했다. 그 친구의 형은 치과의사였고 형한테 3억원을 빌려 개업자금으로 사용을 했는데 1년 반만에 그 3억원을 다 갚았고, 지금 우리 동기들 중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서울대 공대 박사를 하고 만약 국가 연구소에 들어갔다면 연봉이 3-4천만원 정도였을 것이다. 전교 50등 정도가 지방대 의대가서 한달에 3천을 버는데 전교 1등이 서울공대 졸업하고 박사까지 10년을(공부기간이나 난이도는 의대와 다를 바 없다.

 

의대 공부가 양이 많고 빡세지만 서울공대에서 10년간 학사, 석박사 하는 것도 그에 비하면 못지 않다고 본다.)

 

공부해서 연 3천을 받는다고 하면, 누가 참겠는가. 일부는 그래도 참고 그대로 다니고 일부는 못참고 기술고시나 사시나 변시나 회계사나 MBA나 한의대편입이나 등등으로 빠져나간다. 내 과동기 상당수가 그렇게 빠져나갔다.



의치한 열풍을 잠재울 방법은 그들 수입을 줄이는 것이고, 수입을 줄이는 방법은 단 하나 인원을 대록 늘리는 것이다. 의사수가 지금보다 두 배로 는다면 그들 수입은 많이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천재들이 의치한으로 몰리는 일은 거의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 정원을 10% 줄이기로 과거 의약분업 파동때 약속을 했다. 그 이후 실제 10% 정원이 줄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의협 만큼 힘이 센 곳은 없지 않나 싶다.

 

의대생들이 가운 입고 시위를 하다가 경찰 제지에 일부 부상을 당하자(연행도 아니었고 물대포나 최루탄도 없었다) 경찰 고위간부가 의협에 사과한 일도 있었다.

 

성직자보다 의사들의 시위를 훨씬 더 보호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8. 맺음말

이와 같은 글을 쓴 것은 지금 서울대 이공대생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고, 의치한으로 인재가 몰려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