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첨단 공법이 막걸리 살렸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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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공법으로 다시 태어난 막걸리
오전 8시 막걸리 제조장에 들어서자 달달한 막걸리 향이 풍겨왔다. 공장 마당에선 유통업체로 물량을 운반할 직원이 방금 나온 ‘장수생막걸리’ 20병들이 노란색 박스를 바쁘게 트럭에 옮겨 실었다.
6시부터 시작된 막걸리 출하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출하작업은 1차로 오전 9시면 마무리되는데 최근 주문이 늘어 작업이 정오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공장 안은 기계소리로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다.
20년 넘게 이 공장에서 일한 조종업 공장장은 “예전에 비해 시설이 좋아져 사람 손이 거의 가지 않는다”며 “통이 조금이라도 찌그러지는 등 사소한 것까지 기계가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발효실로 이동하자 사람 키만 한 발효통 수십 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구로 본사에서 발효를 시작해, 이 곳 생산 공장으로 옮겨져 14일 가량 숙성을 거치면 막걸리로 탄생한다. 1드럼에 총 5300병의 장수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3월 26일 서울 구로구 서울탁주 제조장)
한때 막걸리가 '카바이트 술'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석유와 비슷한 성분의 화학물질로 자체적으로 열을 발생하는 '카바이트'는 하루 밤에 막걸리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발효하는 데 제격이었다. 그러나 두통 등 숙취 유발의 주범이기도 했다.
막걸리를 수일 이상 자연 발효시킬 때 따르는 비용, 공간, 시간의 문제를 줄이기 위한 카바이트 사용이 늘수록 사람들의 인식 속에 '막걸리=숙취·불쾌함'이란 고정관념도 강해졌다.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위스키나 와인, 맥주 등에 눈을 돌렸다. 저렴한 술을 찾는 이들은 소주를 즐겨 마셨다. 냄새, 트림, 숙취 때문에 막걸리는 젊은 층이나 여성들에겐 접할 기회조차 줄어들면서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지금까지 막걸리 산업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960∼1980년대 말까지 주세법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원료 사용 규정이 밀가루에서 쌀로, 다시 밀가루로 수차례 수정됐다.업계는 그 때마다 제조 시스템을 바꾸는 데 급급해 제대로 된 노하우 축적이나 균일한 제조법을 통한 품질 향상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막걸리가 어느 순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고급술만 상대하던 백화점과 호텔에서도 막걸리가 대접을 받고 있다. 100% 쌀 제조가 가능해진 이후 업계가 제조방식을 표준화해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개발에 힘쓴 결과다.
현재 전국 시장 점유율 50%(서울지역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막걸리 제조업체 (주)서울탁주는 이미 1992년부터 자동제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업체 막걸리가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이유는 '예전과는 다른 맛'에 있다.
자체 연구소를 두고 지속적으로 품질개선을 한 끝에 지금의 '균일한 맛'을 찾아냈다. 전통 막걸리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한 사람이 만들어도 누룩을 뜨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균일한 맛을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겨났던 막걸리 프랜차이즈 전문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에도 사연이 있다. 뚝탁 김재익 본부장은 "싸구려 막걸리나 동동주를 팔던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거의 사라지고 제대로 된 맛과 기술을 가진 곳만 살아남았다" 고 말했다.뚝탁은 무형문화재인 전문 술도가가 직접 담은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쌀 100%의 프리미엄 탁주'를 내세우고 있는 뚝탁은 최근 유통업체 판매용 '참살이 탁주' 를 내놓고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갔다.
포장기술의 발전도 막걸리 인기에 큰 역할을 했다. 기존 막걸리병은 유통기한이 짧고 밖으로 새는 등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캔'이나 '팩'에 담은 살균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유통기간이 늘어나고 수출까지 가능해졌다. 해외 수출용 캔은 1년 가량, 페트병도 8개월 이상이 유통기한이다.
미주 등 세계 어느 곳으로든 수출이 가능해진 이유다. 맥주로 치면 생맥주에 해당한다는 '서울장수막걸리'도 포장 뚜껑을 통해 자연스레 탄산이 배출되도록 만들어졌다. 내용물(액체)은 밖으로 새지 않고 공기만 통하게 한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막걸리 성분과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도 막걸리 상승세에 한 몫 했다.
막걸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게 공통적 실험 결과다. 막걸리에는 10여종의 아미노산과 1.9%의 단백질(우유 3%, 맥주 0.4%, 소주 0%), 그리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유기산이 0.8% 함유되어 있다.
또 피부 미용 등에 좋은 비타민 A, B1, B2 등과 피로 회복에 좋은 젖산, 구연산, 사과산 등의 성분도 다량 함유되어 있다.
신라대 배송자 교수팀은 "막걸리의 생리 활성에 대한 연구" 를 통해 막걸리가 암 예방뿐 아니라 간 손상이나 갱년기 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학부설 한국 영양문제연구소는 "막걸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이란 보고서를 통해 일반주류와 달리 막걸리에는 상당량의 단백질과 당질, 비타민 B2 등이 함유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음주 시 발생하는 혈당의 감소를 막고, 간의 부담을 덜어 알콜성 간경화증이나 영양실조 현상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처럼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결과가 소비자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면서 막걸리는 이제 건강을 위해 '찾아먹는 술' 로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임삼미 기자 smlim@segye.com
- 기사입력 2009.04.22 (수) 14:20, 최종수정 2009.04.22 (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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