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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귀환

희망연속 2009. 3. 12. 22:46

막걸리는 일을 하고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땀을 흘리고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은 정말 건강하다. 허기질 때 막걸리를 마시면 힘과 흥이 솟았다.

 

어느 논두렁마다에도 막걸리 냄새가 났고, 고갯마루에는 길손들을 불러 앉히는 주막이 있었다.


막걸리의 매력은 텁텁함에 있다. 신듯 시지 않고, 쓴듯 쓰지 않고, 단듯 달지 않다. 독주는 조금씩 스며들지만 막걸리는 내장을 단번에 훑는다.

 

땀을 흘린 후 막걸리를 마시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흡사 비늘처럼 돋는다.


 

                                   


 

  

요즘 막걸리에 취하면 논밭 사이 들길이 보이고 이내 아버지 냄새가 난다. 아버지 냄새가 바로 막걸리 냄새였다. 논에서도, 장에서도 아버지들은 노을 깔린 길을 걸어 노을만큼 붉은 얼굴로 돌아오셨다.

 

해가 져서 어두워도 막걸리 냄새를 앞세우고 마을로 들어섰다. 어른들은 말했다. 세상에 막걸리만한 술은 없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일렀다. “술은 하급으로 먹고, 담배는 고급으로 피워라.”


그런데 정말 추억 속에 박혀있던 막걸리가 돌아왔다.

 

올 들어 편의점에서 막걸리 판매량이 50%가량 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단다. 막걸리의 귀환이다.

전주에 막걸리촌이 있다. 어느 집이건 막걸리만 시키면 안주는 마구 준다. 처음 찾는 손님들은 입이 딱 벌어진다. 맛있는 안주가 끊임없이, 사정없이 나온다. 손님이 불안해진다. ‘도대체 이렇게 팔아서 얼마나 남을까.’ 그리고 사실 불편하다.

 

원래 막걸리는 그 자체로 요기가 되는 술이다. 안주를 잔뜩 차려놓고 마시기에는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푸짐해서 좋다가 나중에는 자꾸 남기니 불편해지고, 종내는 슬며시 화가 나기도 한다. 막걸리는 그렇게 좋은 안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안주에 묻혀 팔리는 것은 막걸리의 ‘진정한 귀환’이 아니다.

 

전주 막걸리촌에서는 오늘도 그 많은 안주가 버려지고 있을 것이다. 떠올릴수록 아깝다. 제안 하나 하겠다. 안주 퍼주기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각 집마다 특색있는 안주를 개발하면 어떨까.

아무튼 막걸리는 삐딱하게 앉아 욕지거리를 섞어 마셔도 무방하다. 막걸리를 마시려면 넥타이는 풀어야 한다. 그러면 주모의 걸진 입담이 하나도 상스럽지 않게 감겨든다.

 

요즘 막걸리 집이 부쩍 늘어나 성업 중이란다. 세상에 삿대질할 일이 많아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택근 논설위원> , 2009. 3.12(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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