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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와 기술고시

희망연속 2009. 3. 2. 16:35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현재 모부처에서 일하고 있는 49회 합격생입니다.내년 선발인원을 두고 많이들 고민하시는거 같은데 지난 1년간 바라본 기술직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생각이므로 저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므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정도로만 받으들이시면 좋겠습니다.

 

1. 인원이 많이 줄었으니 전망이 없다?

사실 인원이라는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한데 그것이 핵심은 아닌거 같습니다. 일반행정이나 재경직이 워낙 많이 뽑아서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건 사실입니다만 숫자가 다는 아닙니다.

 

국제통상같은 경우 매년 10명언저리로 뽑지만 직렬의 뽀스는 재경직 못지 않습니다. 인원이 적어서 부처배정은 오히려 재경직보다 더 잘 받는 측면도 있습니다. 숫자가 줄었으니 비전이 없다거나 기술직 우대할 생각이 없다라는 식으로 판단하는건 당장 시험에 합격해야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용인(?)될 수 있을지 몰라도 공직사회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2. 기술직 현황(1) - 현재 기술직의 문제는?

우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공무원의 직렬 분류체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공무원사회에는 직급이라는게 존재합니다. 직급은 쉽게 말해서 직렬+계급입니다.

 

예를 들어 토목사무관이라고 하면 토목직렬+5급 이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가있는거죠. 이런 분류체계가 직군, 직렬, 직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직군이 가장 큰 범위이고 그 다음이 직렬, 직류 이런 순이죠.

 

보통 xx사무관이라고 할 때 xx에 해당되는건 직렬입니다. 이런 직렬분류체계에서 행정직과 기술직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행정직의 경우 행정직렬 내에 4개 직류로 묶여 있습니다. 일반행정, 재경, 국제통상, 법무행정의 네 가지는 직류로 구분이 되는 것이고 모두다 행정직렬에 해당됩니다.

 

즉 일반행정이든 재경이든 모두 다 행정사무관이라는거죠. 이에 반해 기술직은 직렬로 다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가령 농업사무관과 건축사무관은 서로 다른 직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직렬구분체계가 기술직에게 대단히 불리한 이유는 각 부처별로 조직구성을 규정해 놓은 직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 직제의 직위분류체계가 보통 직렬단위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보통신부의 직제 시행규칙을 보시면 <행정사무관·전기사무관·전산사무관·전무사무관 또는 통신사무관    64 >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걸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행정사무관 또는 전기사무관 또는 전산사무관 또는 전무사무관 또는 통신사무관의 TO가 64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사무관이나 수산사무관은 저 TO에 해당되는 자리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직렬별로 분류되어 있는 기술직이 가지는 아주 큰 약점중의 하나입니다.

 

행정직렬로 묶여 있는 4개 직류들은 똑같은 행정사무관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여러 부처로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은데 반해 직렬로 나뉘어 있는 기술직은 이런면에서 굉장히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술직들이 갈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놓더라도 부처발령TO를 안 내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과거 특허청 공채시험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특허청 배치가 많았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시면 됩니다. 또한 행정자치부라든지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곳들도 최근 많은 직제개정을 통해 기술직 자리를 늘렸습니다만 부처배정시 TO를 거의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조직, 인사, 예산 등 공직사회 내부를 통제하는 힘있는 조직들을 이미 행정직들이 다 붙잡고 있는 결과입니다.

 

3. 기술직 현황(2)- 기술직의 비교우위?

여러직렬들이 기술직이라는 공통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기술직이라고 다 똑같은 위상을 가지지 않은건 사실입니다. 특히 토목직 같은 경우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다른 기술직렬과는 좀 차별화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교부 같은 곳은 이미 토목직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최초 장관을 배출한 기술직렬도 토목직이죠. 토목이라는 영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행정의 한 축을 맡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지켜보기에는 부처에서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는 직렬들이 좀더 좋은거 같습니다.  건교부-토목, 환경부-환경, 정통부-통신, 농림부-농업 이런 구도가 짜여지는 직렬들이 아무래도 좋아보입니다 .

 

지금 농림부 차관님도 기술고시 농업직 출신이구요. 오히려 우리 경제의 주류산업을 이끌어가는 전기, 기계, 전산 이런 직렬들은 포지션이 어정쩡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4. 현 정부의 기술직에 대한 정책은?

이번 인원의 대폭 감축으로 비판적 시각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은데 저는 지난 몇 년간의 현 정부의 노력을 많이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술직은 직렬로 구분되어 인사면에서 상당히 불리한데 내년 1월1일부로 공무원임용령이 개정되어 직군, 직렬이 대폭 조정되었습니다. 이번에 선발인원 나온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설(토목), 시설(건축) 이런 식으로 표시되어 있는건 토목과 건축이 시설직렬로 함께 통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직렬통합이 가지는 의미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것이죠. 이제는 기계사무관 자리에 전기사무관이나 화공사무관도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갖추어진 셈입니다.

 

이미 4급의 기술직렬 통합은 이루어진 상태이고 고위공무원단 도입도 어떻게 보면 기술직에게는 기회가 더 많아 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 49회 합격자들의 기술직 부처TO만 보아도 예전보다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허청 TO는 많이 줄었고 부단위 TO가 상대적으로 많이 늘었습니다. 

 

환경직,건축직 같은경우는 청단위 TO는 하나도 없었고 특히 환경직의 경우 꼴찌가 감사원을 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농업직은 전원 농림부 발령이 났습니다.

 

과거 정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 정부에서 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분명히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바라기는 무리가 있겠지요.

 

5. 그렇다면 기술직의 전망은?

적어도 기술정책파트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기회도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내의 정책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면 이공계 우대차원의 배려에서든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구축될 거라고 봅니다.

 

다만 국가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경제부처들, 가령 재정경제부라든가 기획예산처 같은 곳에 기술직이 진출하기는 거의 어려울거 같습니다 올해 기획예산처 같은 경우 이공계 출신 행정직을 뽑기는 했습니다만 아마 이것도 정권의 방향에 따라 시늉만 내다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6. 나에게 과거로 돌아가는 기회를 준다면 기술직으로 시험을 볼 것인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기시를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히 회사에 취직하기 싫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공직사회에 큰 욕심이 없고 상대적으로 다른 시험들에 비해서 비교적 빨리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보니 기시를 그냥 선택했던거지요.

 

기술직들이 행정직들에 비해 많이 어렵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아서 시험에 비교적 빨리 합격하긴 했습니다만 막상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양대축은 법과 경제입니다. 법이라는 업무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제라는 정책적 판단을 통해 국가를 경영하는 것 정부인 것이죠.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기술직들은 관료로서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 부족한 셈입니다.

 

올 초에 선관위에서 오리엔테이션 같은 걸 했었는데 그 때 인사위 관계자분께서 "기술직들은 법이랑 경제 공부하라"고 대놓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때는 머리로만 공감했는데 지금은 정말 몸으로 공감하게 됩니다. 실제 행정에 필요한 것이 고도의 기술적 지식은 아닙니다.

 

정부산하에는 많은 전문적 검토를 지원해주는 연구소, 연구원 등 산하기관들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그런 전문적 검토를 비롯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정책적 판단을 하는 것이죠.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있었던 설문조사에서 많은 기술직 합격자들이 행정법, 경제학 등을 기술직 시험과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술정책영역에서만 일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기술직으로 시작하시는 것도 크게 상관없겠지만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면 재경이나 국제통상쪽으로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밑에 분석중님께서 쓰신 댓글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외부정치인들의 입각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요직들은 재경부, 기예처 같은 경제부처 출신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고 그럴수밖에 없는 불가피성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물론 재경직이 만능은 아닙니다. 재경직 하위권보다는 기술직 상위권이 나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본다면 그런 차이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공계 마인드를 갖춘 행정직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듭니다. 저는 요즘 법공부를 개인적으로 좀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것을 모르고 공무원을 시작한다는게 좀 웃기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게 사실입니다.

 

쓰다보니 너무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결론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기술직도 괜찮지만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면 재경직으로 시작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게 단순히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니 과정이나 결과만 놓고 비교하는건 우스운 일입니다. 어느 길을 가든 자기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충분히 인정받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건 분명합니다.

 

이상 두서없는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엔 꼭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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