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사는 한창재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7시면 자신의 ‘회색 ’ SM5에 오른다.
놀러 가거나, 운동을 하러 가려는 게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다.
1919년 3·1운동 하루 전에 태어나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90세). 직업은 개인 택시기사다.
한국은퇴자협회 조사 결과 택시기사 중 국내 최고령이다. 56년 처음 택시 운전대를 잡았으니 52년째다.
그동안 아파서 한 달을 쉰 것을 제외하고는 일하는 날이면 항상 서울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는 3년 전 콩팥에 탈이나 콩팥 제거 수술을 받았다. 큰 아들(56)을 비롯한 자녀(2남 2녀)가 수십 년 전부터 “이젠 쉬시라”고 말렸지만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자식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내가 벌 수 있는데 용돈을 왜 받느냐”고 되물었다.
“개인택시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쉬거든. 몇 년 전만 해도 새벽 1~2시까지 일했는데 요즘은 오후 6~7시까지밖에 못해.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는 지금도 하루 12시간 꼬박 일을 하면서도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했다. 요즘 수입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하루 15만원 이상 벌었는데 요즘엔 10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했다.
“하루에 적으면 5만원, 많으면 10만원을 갖고 들어가. 경기도 좋지 않은 데다 차까지 막히니…. 한 달에 140만~150만원 벌어 아내에 갖다 주지. 다른 사람에게는 돈 버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나에겐 이게 삶이야.”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러면 바로 가지(죽지)”라고 했다. 늙은 사람이 놀면 병이 나고 더 빨리 죽는다는 설명이었다. 평상시에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일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뭐든 할 수 있다는 ‘젊은 마음’을 가져야지. 늙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 나는 매일 일하니까 동네 노인정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그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6·25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무 살부터 10여 년간 열차에서 일했지. 왜 TV에 나오는 증기기관차 있잖아.
거기서 석탄 때는 일을 했어. 그러다 전쟁이 터졌고 군대에 들어갔지. 그런데 열차에서 일했기 때문인지 운전병을 시키더라고….”
함경남도 출신인 그는 전쟁기간 내내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전쟁 후 3년간 자동차 정비를 하다가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전쟁으로 피폐해져 모두 힘들었던 시절 ‘입에 풀칠하기 위해’ 군대 주특기를 살린 것이다.
처음 운전한 차는 조수가 시동을 거는 시보레였다. 요즘도 어려웠던 옛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겉늙은 사람이 너무 많아. 일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 해야 하는 거야. 특히 젊은이는 도전하고 극복해야지. 귀천만 따지지 않는다면 일은 널려있지.”
그는 건강은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안경을 썼지만 시력도 문제가 없고 목소리도 또렷해 겉으로 보기에는 60~70대로 보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70대까지는 백발이었지만 그 후 검은 머리가 다시 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첫 아내와 사별한 뒤 재혼해 33평형 아파트에서 둘이 살고 있다.
한국은퇴자협회(KARP)는 ‘90세까지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한 할아버지를 ‘올해의 일하는 최우수 고령 히어로’로 선정하고 17일 시상식을 연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