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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안과 밖

레나테 홍 '47년만의 포옹' 스토리(하)

희망연속 2008. 11. 3. 11:40

북한에 머무르는 열하루 동안 나와 두 아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남편 홍옥근이 북에서 재혼해 얻은 자식들도 우리 가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맏딸 광희(40)는 모든 일정을 우리와 함께하며 정이 푹 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떠나던 날 공항에서 그는 눈이 벌겋게 될 정도로 많이 울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광희는 매우 사랑스러운 아이다. 비록 독일어는 못하지만 손짓 몸짓으로 이복 오빠들과 나를 정성껏 보살피고 따랐다.


처음 남편이 공항에 아무런 예고 없이 광희와 불쑥 나타났을 때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남편의 북한 가족이 혹시라도 상처나 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봉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불편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광희는 맏아들 페터 현철이와 둘째 우베의 친누이동생처럼 다정하게 어울렸다. 식사시간엔 오빠들의 숟가락에 살갑게 반찬을 올려주기도 했다. 때론 젓가락질이 서투른 오빠들을 위해 떠먹여 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는 전업주부인 광희는 착한 딸이다. 항상 아버지 곁에서 정성껏 시중을 들었다. 남편의 나들이 옷차림이 깔끔한 것은 광희의 멋진 다림질 솜씨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47년간 끊어진 부자관계가 회복됐다는 점이다. 남편과 두 아들은 만남을 거듭하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했다.

 

또 사랑과 신뢰를 쌓아 나갔다. 우베는 관심사와 성향이 아버지를 빼닮았다. 남편처럼 화학을 전공해 박사가 된 우베는 남을 웃기고 분위기를 띄우는 명랑한 성격까지 비슷하다. 우베는 아버지를 졸라 이번에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형처럼 한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홍현호. 우베의 새 한글 이름이다.

내향적인 성격의 맏아들 페터 현철은 다른 곳에서 아버지와 닮은꼴을 발견하고는 마냥 신기해 했다. 우연하게도 자신의 손가락 마디 모양이 남들보다 도톰한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다. 뜻밖의 발견에 남편 홍옥근과 우베, 심지어 광희까지 서로 손가락 마디를 비교해 보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두 아들에게 부자상봉은 일생일대의 사건일 것이다. 두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늘 서류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힘든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없는 부족한 자리를 내가 메워 주려 애썼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런 어린 시절의 남모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두 아들이 갑작스레 이뤄진 아버지와의 상봉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북한에 머무는 동안 명승지인 서해갑문과 해수욕장, 묘향산과 보현사, 용문대 동굴 등을 둘러봤다. 평양에선 평양산원, 대동강 맥주공장, 타조농원, 대성산 유원지의 중앙식물원과 광법사, 3대 혁명전시관 등을 관광했다.

 

당초 예상했던 7박8일간의 체류기간으로는 모두 소화할 수 없어 결국 비자를 연장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귀국 일정이 늦어져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독일의 친지들이 몹시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들었다.

평양에서 따로 숙박을 하던 남편과 나는 1박2일 일정의 묘향산 관광에선 한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쓸 수 있었다. 47년 만이라 어색했지만 둘만의 못 다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북한을 떠나기 전날은 가장 힘든 하루였다. 광희는 하루 종일 슬픈 모습이었다. 밥도 잘 못 먹고 얼굴 표정은 어두웠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남편의 팔을 다독이며 “건강하세요”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광희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남편의 옆모습에서 47년 전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표정이 선하게 떠올랐다.

정리=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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