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고 해도 노후가 불행하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자의든 아니든 간에 불행을 선택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후 준비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남아 있고, 어느 정도 선택권도 갖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서 인생의 방향을 행복으로 돌릴 것인가? **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며 100달러짜리 화폐의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
그가 생전에 소유했던 집을 수리하여 보존하고 있는 '프랭클린 코트' 에는 그가 쓰던 책상 따위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가 남긴 수많은 경구 중에서 세 개의 격언이 세 대의 컴퓨터에 각기 쓰여 있다.
그 중 하나가 다음의 글이다. "사람은 충실한 친구가 셋 있다. 오래 함께해 온 아내와 오래된 개, 그리고 준비된 재산이다."
나는 이 글에서 미국 정부의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었다. 20여 년 전부터 미국 정부는 노후 준비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 왔다. '정부는 최소 보장만 한다. 나머지는 각자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하라.'
그리고 많은 금융 교육이 뒤따랐고, 국민들 각자가 노후 대비를 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많은 사람이 제대로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국가는 적자 재정이고, 개인 역시 부채에 몰려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제1의 부자 나라인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 건강보건청' 인구조사국' 사회보장제도국의 자료에 따르면,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백 명이 65세가 되었을 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열세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열한 명은 연소득 1만 8000달러 이하로 허덕이며 생활하고, 예순여섯 명은 1만 8000달러에서 6만 달러 사이의 수입으로 그럭저럭 살며, 열 명만이 재정적으로 독립하거나, 더 나아가 부유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40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은퇴했을 때, 백 명 중 아흔 명은 사망하거나 재정적 곤란, 더 나아가 재정적 재난에 처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미국 재정 전문가들도 '미국의 역설' 이라고 하며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들은 실패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20년이 앞선 미국이 이럴진대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이 더 심각하다. 그런데 그 심각성조차 모르는 상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90퍼센트는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은퇴라는 중간 역에 도달해 20~30년 간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차비가 떨어진 격이다. 내가 쓸데없이 위기감을 조성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1년 간(2005년 3월에서 2006년 3월까지)의 기사 제목은 우리를 무척 스산하게 만든다.
'한국인 70세까지 벌어야 한다.' '노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50대, 지갑을 안 연다. '젊어선 보육비, 늙어선 생계비 걱정.' 인류의 오랜 소망인 장수가 왜 두려움으로 등장한 것일까? 오래 사는 기간을 유지할 적정한 경제력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얼마나 필요한가?
은퇴 후에도 현재와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
첫째, JP모건 인베스트가 발표한 '행복한 노후 비용 계산법' 에 따르면,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돈은 '현재 연봉×55-(나이÷3)-(은퇴 나이÷7)'로 산출된 금액이다.
예를 들면 연봉이 4000만 원인 A씨(40)가 60세에 은퇴한다면 약 13억 원이 있어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계산법은 은퇴 후에 얼마가 필요한지 감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풍요로운 노후 생활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그런지 너무 과도하게 산정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이 노후에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려면 이 공식에서 산출한 금액의 50퍼센트가 적정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노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모 생명보험 회사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부부가 은퇴 후 30년 간 사는 데 필요한 노후 자금은, 최저 생활비를 유지할 정도는 4억 8000만 원, 여행이나 건강 검진을 받는 등 중산층 수준은 약 7억 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금액은 끼니만 계산해 보아도 결코 많게 책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한 끼에 5000원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1만 5000원이 든다. 이렇게 20년쯤 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식비만 1억 6300만 원이나 된다. 부부의 경우에는 3억 2600만 원이나 된다.
개인의 노후 준비는 국민연금과 기업연금 그리고 개인연금의 세 축으로 완성되는 구조다. 이러한 삼층 구조를 갖고 있는 선진국들도 노후에 돈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차 중심 축인 국민연금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2003년에 처음으로 재정 계산을 해본 결과, 태생부터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만들어 2047년에 적립 기금이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두 번째 축인 기업연금은 2006년에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마 상태이니 개인이 기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차, 2차 축이 금이 가거나 기초를 이제 쌓아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개인연금은 어떤가.
가입자가 절반도 되지 않는 데다 가입 금액이 20, 30만 원대여서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은퇴 계획 웹사이트인 웨비너는 '여유 있는 은퇴 생활을 위한 열 가지 팁' 에서, 월 수익의 15퍼센트가량을 은퇴 자금으로 준비하라고 권한다.
이 15퍼센트는 대략 개인퇴직계좌(IRA)와 기타 투자 자금 등을 고려해서 산출한 것이다. 약 15퍼센트의 저축은 현재 월급의 50퍼센트만큼의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과거에는 금리가 10퍼센트를 넘어 '단기 저축' 에 올인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고령화 사회 진입 등 시대적 변화로 예금의 자산 증식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은퇴 후 10년가량 먹고 살 것만 준비해도 되었지만, 지금은 은퇴 후 20~30년 먹고 살 것을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일시적 목돈 마련에서 이제는 교육 자금 확보, 노후 준비 등 목적에 맞게 준비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렇다면 주식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주식 시장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이 돈을 잃는다. 이렇게 불안정한 시장에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맡겨서는 안 된다. 직접 주식 투자로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은 도박이고, 또 승률도 낮다
.
부동산은 은퇴 대안이 되는가? 은퇴 계획이 초장기임을 감안할 때, 부동산만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첫째, 출생률이 2000년 이후에는 50만 명 이하로 떨어져, 2020년 4990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주택 수요도 급격히 줄 것이다.
윤여필 박사는 <매경 이코노미> 3월 15일자에서, 베이비 붐 세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1950년대 출생자들이 30대 중반이 된 1986년부터 40대 초반인 1991년까지 집을 사들였다.
또 196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IMF 외환 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40대 초반이 된 2000년에 주택 가격이 다시 올랐다' 고 밝혔다. 이 분석에 따르면, 베이비 붐 세대의 주택 구입 사이클이 끝나면 부동산 가격은 하락한다. 거기다가 베이비 붐 세대가 퇴직할 때는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재원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팔 수밖에 없어 부동산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
둘째, 부동산은 유사 이래로 분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모든 부자들의 우환은 '자식과 세금' 이다. 가장 큰 리스크인 '자식'. 부모가 부동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퇴직금이나 토지 보상금을 손에 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온갖 구실로 손을 벌리는 자식을 외면할 수 없어 이삼 년 내에 거의 다 날리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리스크인 '세금'. 정부는 이미 구멍 뚫린 배인데 쓸 돈은 많다. 그렇다면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자 소득세와 부동산세는 올릴 것이다.
참고로 선진국들의 이자 소득세는, 2000년도 OECD에서 발표한 세금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 60퍼센트, 독일 53.8퍼센트, 스위스 43.5퍼센트, 미국 46퍼센트, 영국 40퍼센트다.
미국의 재테크 관련 잡지 <머니>도 행복한 은퇴 생활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연금을 권하고 있다.
① 은퇴 시점을 스스로 정하라. 그래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뿐 아니라 은퇴 이후에 돈 벌 기회를 찾기가 쉽다.
② 적극적으로 일하고 살아라.
③ 일정한 수입원이 되도록 자산을 분산 투자하라. 목돈을 주식이나 채권에 넣어 두는 것보다는, 매월 일정한 소득이 생기도록 연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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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다하는 날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
- 금융계 명사에서 택시 기사 된 김기선 씨의 은퇴 후 생활
택시 기사 김기선 씨(63)는 젊은 시절부터 39년 동안 금융계에 몸담아 온 사람이다. 신용금고 대표이사로 세 번째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두고 있던 2001년에 그는 갑자기 퇴직을 선언하고 택기 기사 옷을 입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주주들이 밀어낼 때까지는 더 자리를 지키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미련 없이 물러났다.
개인택시를 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3년 동안 회사 택시를 몰 때는 정말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고장투성이 차량을 끌고 다녔기에 엑셀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던 일, 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던 일 등,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 많았다. 또 자식뻘 되는 손님에게 욕설까지 얻어먹을 때는, 환갑 넘은 나이에 이게 잘하는 건가 싶기도 했단다.
그래도 금융회사 대표를 지냈는데 택시를 시작하면서 주변 시선이 의식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세상에 나를 정말 걱정해 주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습니다. 바로 부모죠. 다른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든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 시선에서 사라지면 모두 잊어버립니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지, 남이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체면이나 과거의 지위 따위는 하루빨리 지워 버리는 게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택시 일을 정말 좋아한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을 때도 개인택시를 뽑았을 때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택시 기사가 김기선 씨 같은 마음이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젊었을 적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 해보고 싶은 것 다해봤어요. 30대 초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를 사서 몰고 다녔지요. 산악회를 조직해서 전국 산들을 두루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는 남들보다 먼저 골프를 배웠어요. 또 식도락가여서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점도 많이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크게 돈은 모으지 못했습니다.
집 한 채 있고, 아플 때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저축해 둔 것이 전부입니다. 큰 욕심 없습니다. 너무 많은 돈도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택시 열심히 하면 한 달에 100~150만 원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제 직장 다닐 때 넣어두었던 연금이 70만 원까지 나오고, 이만한 수입이면 노후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은퇴 생활에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돈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도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이 은퇴 후에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는 가끔 예측이 되기도 한다. 짬짬이 와인을 즐겼던 사람은 은퇴 후에 와인 사업을 하고, 주말마다 전시회를 관람했던 사람은 은퇴 후에 화랑을 차린다.
또 교육에 참여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은 은퇴 후에 남들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은퇴 시기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힘이 될 때까지 자기 사업을 일구겠다고 생각하고, 적절한 때에 후계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기선 씨는 30대 초반에 이미 은퇴 후에는 택시 기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은퇴 후에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 한번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