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시골의사 박경철 본문
시간은 덤을 허용하지 않는다. 왕후장상, 걸인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시간은 24시간이다. 시간의 몰인정함은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낳는다. 그러나 마법을 부리듯 시간을 뻥튀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1972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뜬 구소련의 과학자 알렉산드르 류비셰프. 그는 철학, 과학사, 곤충학, 식물학, 무신론, 진화론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학술서적 70여권과 연구논문 2만5천여장 등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사람이 있었다.
박경철. 외과 개원의이지만 ‘시골의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투자분석가다. 7년째 경제 케이블TV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책을 여러 권 낸 베스트셀러 작가. 언론매체에 기고하는 고정 칼럼만 한달에 30건 가까이 되고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최근엔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거기에 TV 드라마 ‘뉴하트’의 자문 역할까지. 그가 경영하는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막 수술을 마치고 그는 기자 앞에 나타났다.
-기고 요청 때문에 통화는 여러번 했지만 뵙기는 처음입니다. 보통 사람들로선 이뤄내기 힘든 전문적 지식과 명성을 여러 분야에서 이뤄낸 비결이 궁금합니다.
“의사가 의술로 유명해야 하는데….(웃음) 사실 전 못하는 게 많습니다. 10년 전 '술, 담배, 도박, 여자, 골프' 이 다섯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5금 원칙’을 세웠어요.
그걸 지키니 남는 게 시간이더군요. 별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전 계획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일간·주간·월간 계획이 아예 없어요. 하루하루를 절실하게 삽니다.
삶쪽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가슴 아리게 행복한 때가 많습니다. 망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봅니다. 책은 나보다 더 똑똑한 이들의 사유물이라 배울 게 참 많습니다. 그걸 책으로 칼럼으로 써내니 ‘프로덕트’(결과물)가 많은 것처럼 보일 뿐이겠지요.”
-최근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거의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았는데 뜻밖입니다.
“평소 친분이 깊은 박재승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관점을 놓고 볼 때는 한 정당이 너무 앞서 나갈 때 부작용이 크지요. 정당 간의 균형과 건강한 견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감도 작용했고요. 제 입장에서는 어느 당의 공천심사를 맡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의석을 압도하고 정국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 위촉 요구에 응했을 겁니다. 정치 직접 참여에는 관심 없습니다.
얼마 전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의를 받고 순간적으로 흔들렸습니다만, 아니라는 결론을 내는 데는 10분이 채 안 걸리더군요. 누가 뭐래도 저는 의사이며 앞으로도 의사이길 원합니다.
-의사인데 투자분석가가 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주식 투자를 하고 계시는지요.
“사람들은 달리는 마차에 타서 절벽에 도달하기 전에 뛰어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마차와 함께 절벽에 떨어지지요. '상투'에서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더군요.
사람들은 왜 이토록 명백한 위험에 이성을 잃고 뛰어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게 주식시장은 세상을 해석하는 대상이자 도구이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닙니다. 1999년 당시 저도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2000년 이후 시각을 완전히 바꿨어요. 선수가 아니라 해설자가 되기로 말입니다.
직접 주식 투자를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믿을 만한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겨놨어요.”
-주식시장이 불안합니다. 주식 팔고, 펀드도 해약해야 하나요?
“지난해 7월 국내 증시는 ‘고점 신호’가 확연했습니다. 지수는 올랐지만 정작 하락 종목 수가 더 많았지요. 주가가 더 오르려면 유입되는 돈이 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금리마저 7%까지 올라 유동성을 빨아들였지요. 근거 없는 낙관론이 팽배했고,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는 세력들만 있었어요. 이런 현상은 1999년에도 있었습니다.
기업 실적을 감안할 때 한국 증시는 종합지수 1500~1600선이 적정가라고 봅니다. 강세장이라면 적정가보다 올라갈 것이고, 약세장이라면 내려갈 겁니다. 지수는 올 연말부터 하락을 멈추고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이다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상승세로 돌아설 것 같습니다.
업종별로 볼때 조선·기계업종 등 소위 ‘중국 관련주’는 고평가돼 있고, 자동차·IT·금융주는 저평가돼 있다고 봅니다. 주식을 사고자 한다면 시장 평균보다 저평가된 이들 업종 종목을 분할 매수한 뒤 보유하길 권합니다. 펀드에 가입한다면 지수 연동성이 낮은 가치주 또는 배당주 펀드가 유망할 것 같네요.”
-중국 펀드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 증시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익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익의 질이 나쁩니다. 중국기업이 내는 이익 가운데 40%가 유가증권 평가익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 기업의 30%가 영업 활동으로 이자를 못 갚는 부실기업이지요.
더 나쁜 것은 회계 조작으로 영업이익을 조작한 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잠복한 위험 때문에 당분간 중국 증시에선 경계심과 낙관론이 충돌할 겁니다. 중국 펀드에 가입해 있다면, 거치식의 경우 반등 줄 때 절반 정도를 줄이고, 적립식 가입자의 경우 지속 투자하다가 상황 변화에 따라 판단하라고 조언하고 싶군요.
적립식 가입자라면 지금은 뺄(환매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경제 둔화 또는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미국 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서브프라임 위기는 지난해 과소평가됐지만, 지금은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뉴욕 증시의 단기 하락은 멈췄다고 봅니다만 다우지수는 1만 포인트 아래로 갈 것 같습니다.
미국의 달러화 약세와 쌍둥이(무역 및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이번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가 금리를 인하하고 부시 행정부가 재정 부양책을 썼는데, 중환자에게 영양 주사를 놓은 격입니다.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됩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데는 2년 정도가 걸릴 듯합니다. 뉴욕 증시는 올 연말부터 하락을 멈추고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이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상승할 것으로 봅니다.”
박경철 원장은 주식시장을 ‘Mr. 마켓’이라고 불렀다. 번뇌와 욕망의 결집체이며 투자자들의 생각은 물론이고 몇 수 앞까지 훤히 간파해내는 고등지능 생명체라 했다. 주식시장을 분석하기 위한 첨단 이론과 예측 도구들이 명멸했지만 이 ‘영물’은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박 원장은 주식 이야기를 하다가 석가 노자 장자 이야기를 꺼냈다. 일반인의 사유를 넘어서는 성인들의 사상이야말로 Mr. 마켓을 간파해 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donodonsu/)는 ‘돈오돈수’(단박에 깨닫는다는 뜻의 불가 용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애정, 삶의 진정성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kimhy@msnet.co.kr
▨ 박경철은?
1999년 ‘IT 버블’을 예견해 ‘스타’로 떴고, 2006~2007년 증시 활황을 예고했다. 지난해 7월 국내 증시가 2천 포인트를 넘기며 투자자들이 열광할 때 모든 주식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최근 폭락장이 연출되기 직전에 1500을 구경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을 경영하고 있으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를 맡고 있다. MBN '생방송 경제나침반'을 진행하고, 머니투데이 경제신문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소아암재단 고문, 일촌 공동체 상임이사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2’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착한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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