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우리나라 최고의 빵집, 군산 이성당 본문
▲ 이성당 입구, 꼬마손님들 발걸음이 무척 경쾌하게 느껴진다. |
줄서기는 모닝 세트가 나오는 오전 7시부터 밤까지 하루에 몇 차례 반복된다. 주말에는 대열을 이루는 사람들의 80~90%가 외지인이다. 그들은 빵 맛을 보기 위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기다린다. 피곤하고 지루하기도 하련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을 즐긴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거나 셀카봉을 들고 'V'자를 그리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등 '단팥빵'만큼 고소하고 달콤한 추억을 만든다.
1950~1960년대 대표 메뉴는 '단팥죽'과 '꿀단지'
▲ 인절미와 땅콩가루 등을 고명으로 얹은 이성당 단팥죽(2014년 1월 촬영) |
일제 강점기 양과자점, 화(和)과자점 등으로 불리던 군산의 제과점들은 해방 후에도 다양한 빵과 함께 당고(짬짬이), 모찌(찹쌀떡), 요깡(양갱), 옥꼬시(강정), 센베이(부꾸미) 아이스케키 등을 만들어 팔았다.
메뉴가 일제 식민지 시절과 같았던 것. 그중 으뜸 메뉴는 쫄깃한 찰떡이 들어간 젠사이(단팥죽)였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 먹을 수 없었다.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제과점들이 입구와 내실에 홍보 전단을 붙여놓고, 개복동 극장가에 '젠사이집 골목'이 조성될 정도로 유행했던 단팥죽. 그중 찹쌀 새알심이 들어간 이성당 단팥죽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추수 때나 현금을 만져볼 수 있었던 농경 사회에서 시골의 청춘 남녀들이 애인과 함께 꼭 한번 먹어보고 싶은 메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성당에 가면 달콤한 향이 솔솔 풍기는 단팥죽을 테이블 위에 놓고 맞선을 보는 처녀 총각이 종종 눈에 띄었다.
▲ 입맛을 다시게 하는 다양한 과자가 질서 있게 정돈된 이성당 진열대. |
정부가 결혼식 축하객에게 음식 접대를 못 하게 막았던 1960~1970년대. '이성당' 상호가 선명한 '결혼 답례품'은 또 다른 인기 메뉴였다. 답례품 상자 안에 미군 콘센트처럼 둥근 모양의 롤케이크 두 개가 들어 있었던 것. 갈색의 롤케이크는 부드러운 '카스테라 빵'으로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았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쟁탈전을 벌였으며, 실제 그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역전의 명수'들 미팅 장소가 되기도
▲ 김현주 사장과 왕년의 홈런왕 김봉연 교수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2014년 1월) |
야구 명문 군산 상고 출신 '역전의 명수'들 가슴에 남아 있는 '이성당의 추억'은 애틋했다. 송상복(스마일피처), 김성한 전 한화 수석 코치는 가난해서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했고, 조규제와 배터리를 이뤘던 이성일 도 의원은 야채빵과 곰보빵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침을 꼴깍 삼키는가 하면, 김준환 원광대 감독은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뜻깊은 장소로 기억했다.
여고생들과 미팅을 몇 차례 해봤다는 김봉연 극동대 교수 얘기를 들어본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하고 야구 좋아하는 군산여고 학생들을 이성당에서 몇 차례 만났죠. 우리는 3, 4명이 빵 값을 거둬서 나갔는데, 여학생들은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 곤란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도 '앙꼬빵'(단팥빵)이 단연 최고였죠. 하루는 여학생 하나가 빵을 더 먹자고 하는 거예요.
돈은 없고, 난처하더군요. 마침 다른 여학생이 돈은 내가 내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구세주 같더라고요. (웃음) 돈이 없을 때는 홍약국(명산동) 사거리에서 만나곤 했는데, 지금은 다들 뭐 하고 지내는지, 모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네요."
김 교수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성금 모금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행사를 진행하던 여성의 소개로 지금의 김현주 사장을 알게 되었고, 그 후 군산에 내려올 때마다 이성당에 들러 추억이 깃든 단팥빵도 맛보고 김 사장과 안부도 주고받는다"고 덧붙인다.
해방 후 군산에는 이성당을 비롯해 황금당, 진미당, 군산당, 백만당, 태극당, 금주당, 조화당 등 난다 긴다 하는 제과점이 20여 곳에 달했다. 변두리와 시장통 업소들을 합하면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70년대 초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바뀌면서 거의 사라졌다. 빵과 빙과류 제조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 그중 이성당만 현존하며 '국민 빵집'으로 사랑받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해외 수출 시장 열어
▲ 진눈개비 날리는 2014년 겨울 어느 날 이성당 입구 풍경. |
조 대표는 2005년 군산에 쌀가루 전문 공장을 세운 후 '화과방', '햇쌀마루' 등 고유 브랜드를 개발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쌀빵 전문 베이커리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봄에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입점에 대비, 군산 서수농공단지에 자동화 시설을 갖춘 빵 공장을 신축했다.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중량이 1톤이나 되는 오븐을 공수해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빵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란 조 대표는 1980년대 초 이성당을 물려받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가게 운영을 맡기고 팥소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창업, 우수 중소 기업으로 키워낸다.
국내 유명 카페와 제과점 등에서 사용하는 팥소의 70%가 대두식품 제품인 것에서 잘 나타난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 시장을 개척, 미국·일본·호주·캐나다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이성당 상징 메뉴는 야채빵과 앙금빵
김현주 사장 설명에 따르면 하루에 이성당에서 만들어지는 빵, 과자, 사탕, 케이크, 빙과류 등은 그 종류가 200~300개에 달한다. 그중 앙금빵(단팥빵)과 야채빵은 진즉에 이성당의 키워드로 자리를 굳혔다. 주말에는 한 사람이 10개 이상 구매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모닝 세트'도 인기 메뉴다. 야채 수프와 토스트 등으로 이뤄진 모닝 세트는 새벽에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1970년대 후반 개발돼 40년 가까이 시민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저는 제품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남편이 더 잘 알죠.(웃음) 모닝 세트도 남편 아이디어로 개발됐거든요. 제가 결혼한 지 30년도 넘었는데, 야채빵과 단팥빵 인기는 그때도 좋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빵 안에 들어가는 소의 양을 줄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물가가 엄청 올라도 줄이지 않았지요. 그게 지금까지 맛을 지키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월빙빵으로 알려지는 블루빵과 앙금빵, 야채빵.(위에서 부터) |
"지난 1일 군산에 도착해서 이성당으로 직행, 야채빵 두 개를 사 먹었는데, 맛이 좋았어요.
처음 먹어 봤는데, 소문대로 야채가 가득 들어 있어 만족스러웠죠. 만두처럼 피가 얇고 신선한 야채가 많이 씹히니까, 고생하면서 내려온 보람을 느꼈다고 할까, 아무튼 새로운 느낌을 받았죠. 어제 사두려고 했다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인지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오늘로 미뤘죠. 어제는 맛만 봤으니까 오늘은 단팥빵이랑 고로케랑 넉넉하게 사가려고 합니다."
이성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게 단팥빵과 야채빵이다. 그 중 팥소가 가득 들어간 단팥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팥빵 같지만, 반죽을 쌀가루로 해서 일반 빵보다 훨씬 차지다.
무더운 여름에는 냉동실에 며칠이고 보관했다가 먹기 하루 전쯤 냉장실로 옮겨놓고 하나씩 꺼내먹으면 식감이 졸깃하고, 팥소의 단맛에서도 또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빵을 사기위해 줄지어선 손님들(지난 5월 2일 밤 8시23분 촬영) |
김현주 사장
○ 편집ㅣ최은경 기자, 글 조종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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