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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작성은 이렇게

희망연속 2009. 7. 21. 17:58

[金과장 & 李대리] 부장 말 듣고 밤새 쓴 보고서, 이사는 "이게 아닌데…"

 




"그래서 고객들에겐 뭔 도움이 된다는 거야. 너도 잘 모르겠지? 다시 써!"

또 깨졌다. 이달 들어 벌써 몇 번인지 모른다. 김 과장 이 대리,요즘 더위가 아니라 보고서 때문에 죽을 맛이다. 딴에는 머리를 쥐어 짜내고 선배들의 작품을 열심히 본뜬 '역작'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쓰면 '길고 장황하다'며 짜증이고,짧게 쓰면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난리다.

그뿐인가. 매출향상 기획보고서에,성과보고서,출장보고서,시장동향 및 경쟁사 동향보고서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게다가 보고채널도 어찌나 많아졌는지.전자결재도 모자라 이메일로,메신저로,문자메시지로 수시 보고하는 게 요즘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잘나가는 박 부장,최 이사도 그야말로 '허벌나게' 깨지던 시절이 있었다지 않은가.

하기야 난다 긴다 하는 장 · 차관,청와대 비서관도 보고서 작성에 늘 한숨이 서말이란다. 시분초를 다투며 매일같이 보고서와의 전쟁을 치르는 김 과장 이 대리,그들에게 보고서의 의미를 들었다.

◆'보고 없는 세상 어디 없나요?'

중견 기업 K 과장.그는 요즘 들어 아예 점심 먹을 생각을 하질 않는다. 오후 2시 정각에 시작하는 전략기획 회의용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전에 없었던 오후 기획회의를 지시한 것은 지난달 사장에 취임한 오너 회장의 아들.

고급 공무원 출신인 그는 간단한 보고 내용을 모두 문서화할 것을 주문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업무 추진 과정을 기록해 둬야 나중에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부실한 보고서 작성 실태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했다.

 K 과장은 "하루 일과 중 3분의 1을 보고서 작성으로 보내고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고 나면 점심식사는커녕 친구들과 전화 한통 하기도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핵심은 제쳐 두고 사소한 문구만 물고 늘어지는 상사도 어디든 꼭 있다. 화장품 회사 이모 대리.그에게 상사가 붙여준 별명은 '오타의 왕자'다. 물론 가끔씩 숫자에서 '0' 하나를 빼먹곤 해 스스로도 '맞아도 싸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하지만 맞춤법,글자 크기,글자 간격,서체 등을 사사건건 지적당해 다시 보고서를 작성할라치면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더 많다.


◆ 어느 장단에 춤 추리오

하나의 보고서를 두고 부장,임원 등 상사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은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이모 과장(32 · 여)은 '모난 부장' 때문에 보고서를 쓸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곳저곳을 고치라는 부장 지시 때문만이 아니다. 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사는 부장의 지시 사항들에 대해 "내 생각은 다르다"며 재수정을 지시한다.

이 과장은 "직속 상사인 부장과 상급자인 이사가 힘겨루기에 빠져 있는 통에 나만 중간에 끼어 애를 먹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력이 안 좋은 거래회사 회장님도 걸림돌이긴 마찬가지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박모씨(30)는 거래처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FM' 보고서를 만들어 보냈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회장님 눈이 어두우시니 글자 폰트를 14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키워 달라"는 요청이었다.

종이 크기도 A4에서 B3로 늘려 달라고 했다. 급기야 세로 보고서를 가로로 보내 달라는 요청까지 들어줘야 했다. 그래프 도표를 가로로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는지. 그는 밤새 보고서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 깨지면서 배운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승모 과장(37).기획팀에 근무한 지 만 6년인 베테랑 기획맨인 그는 몇 주 전 팀장으로부터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핀잔을 들었다. 보고서에 인용한 숫자가 틀렸던 것.

사장과 주요 고위 임원들이 '산수도 못하는 놈이 누구냐'며 불같이 화를 냈지만 한마디도 변명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보고서 10번 이상 소리내 읽는 퇴고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식품회사 S 과장(여)도 아픈 기억이 있다. '원페이지 프로포절'이라는 유명한 보고서 작성법 책을 접한 뒤 모든 보고서를 한장으로 요약했다가 '차포 다 떼고 이렇게 말하는 근거가 뭐야. 니가 투자 책임질 수 있어?'라며 시쳇말로 박살이 났던 것.

그는 "간단명료한 보고 이면에는 부서장과의 사전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고,근거 자료를 수십,수백장 이상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놨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L 홍보실장도 첫 보고서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는 "보고서를 완벽하게 쓰려고 애를 쓰다 보니 보고서 하나가 20장을 넘는 게 많았고,관련 정보 등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 욕심을 부렸더니 상사들이 '네 실력을 과시하라고 보고서 쓰는 게 아니다'며 짜증을 냈다"고 했다.

'양'으로도 먹혔던 학창 시절 리포트와 '질'로 승부하는 기업용 보고서를 구분하지 못했던 셈이다.


◆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힘

하지만 남다른 독창성으로 몸값을 높여가는 '보고의 달인' 김 과장 이 대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아시아 PR어워드'를 수상한 한국애보트의 김유숙 팀장.그는 늘 '엘리베이터 토크(talk)'를 머릿속에 담고 산다.

 "회장님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을 때를 상상하면서,그 짧은 시간에 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려본다"는 것이다.

가능한 A4 한 장에 간결하고 짧게 정리하되,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고생한 내용들을 전략적으로 곳곳에 잘 녹여내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관건이란 얘기다.

한승훈 삼성전자 과장(35) 역시 사내에서 잘 알려진 보고의 달인이다. 요약본을 맨 위로 배치하고 설명본을 아래로 두는 '톱다운' 방식 보고서 작성법은 상사로부터 칭찬받는 그만의 비법 중 하나다.

"맨 첫장에 박스(box)를 만들어 A4 반장 이내에 모든 내용을 정리합니다. 어려운 개념일수록 삽화나 사진 등을 적절히 섞어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

LG하우시스의 신주용 과장도 사내에서 보고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원칙으로 삼는 것은 'KISS'와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협력)'그리고 '타이밍'이다.

 "친구인 기자에게 배운 'Keep It Short and Simple(짧고 간결하게)' 원칙에서 많은 영감을 얻죠.가능한 한 초고의 양을 5분의 1로 줄입니다. "

기획안의 경우 방향성을 정확하게 잡기 위해 상사와 적극적인 콜래보레이션을 시도하는 것도 그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독자인 상사의 관점에서 써야 합니다. 역지사지란 얘깁니다. 타이밍도 중요하죠.무엇을 상사가 궁금해 할 것인지를 평소에 시나리오별로 정리해뒀다가 필요한 시점에 즉각 제공해야 보고서의 진가가 빛을 발한다고 봅니다.

철 지난 과일은 제맛이 안 나고 값도 떨어지는 이치죠."


 2009-07-20 화요일,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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