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속
천재 이세돌, 이대로 꺾이나? 본문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금년 7월부터 1년반 휴직계를 냈단다.
허망하다. 또 한사람의 천재를 잃는 것은 아닌지.
이세돌이 누군가.
전남 신안 비금도 보잘것 없는 섬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바둑에선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 12세에 프로에 입문, 26세가 된 지금은 수년째 한국 부동의 1위요, 중국의 구리 9단과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는 천재기사다.
그의 바둑은 수읽기가 비범하고 변화무쌍해서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말을 순식간에 다시 살려내는가 하면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는, 말하자면 묘수와 임기응변의 달인이다.
그의 바둑은 다분히 전투적이고 피냄새(?)가 진동한다. 그래서 더욱 스릴있고 드라마틱하고, 그래서 더욱 팬이 많다.
그런 이세돌이 왜 저렇게 코너에 몰리고 있을까. 간단하다. 한국기원이 시키는대로 안했으니 못봐주겠다는거다.
그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리버럴한 편에다가 New Age인 관계로 약간은 튀는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바둑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그를 이해해 주기는 커녕 선배 기사들과 한국기원은 예의가 없다고 평소에도 밉상으로 여기는 편이었다.
우리나라는 어떤 틀, 조직문화, 위계질서 이런게 강한 편이다. 이를테면 운동부, 군대, 회사에서나 위아래, 상명하복, 머 이런 문화가 쎈 편이다.
그래서 윗사람, 고참, 조직의 논리에 대드는 건 앞뒤 가려보지 않고 무조건 건방지다거나 반항아로 낙인찍어 울타리 밖으로 내몰려는 추세가 강하다. 한마디로 살고싶으면 고분고분 말잘듣고 굽실대기만 하라는거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조중동, 검찰과 같은 기득권 세력에 온몸으로 맞서다가 죽음에 이른 불행한 사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변호사, 국세청장의 노대통령 서거 책임을 고발한 나주세무서 직원의 일례는 시사하는바가 크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경위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는 일인데도 한국기원과 조훈현 9단을 비롯한 고참기사들은 최선을 다해 이세돌을 이해나 설득을 시도하기는 커녕 소속 기사들을 동원, 규정에도 없는 징계를 의결하는 등 성급하게 그를 굴복시키려고만 했다.
이세돌은 지난 2월 백담사에서 열린 LG배 세계 기왕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구리 9단에게 2대 0으로 완패했다. 바둑내용도 좋지 않았다.
불과 나흘전에 중국에서 있은 농심배 결승에서 구리 9단을 통쾌하게 꺾은바 있고, 그 여세를 몰아 LG배에서도 앞설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한국기원에서는 이세돌의 요구를 일축하고 일방적으로 일정을 조정하여 이세돌의 컨디션에 무리가 왔다고 한다.
이세돌과 한국기원 측의 말이 서로 달라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자유분방한 이세돌이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혼자 움직이겠다고 하자 선수입장 보다는 식전 이벤트 등 홍보와 돈벌이에만 눈독들이고 있는 한국기원에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원의 비협조에 크게 상심한 이세돌은 대회전부터 패할 것 같다는 소리를 주위에 하기도 했고, 결국 라이벌 구리에게 완패했었다.
더욱이 중국리그에 참가하여 세계정상과 자웅을 결하는 마당에 국내기전에 먼저 참가하라면서 이세돌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이틀 사흘 간격으로 세계 정상들과 혈투를 벌인다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고도의 두뇌게임인 바둑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건강유지 또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코딱지만한 국내 기전 참가를 강요하고, 세계 1위 기사의 의사는 무시한 채 바둑일정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외국에서 힘들게 벌어들인 돈을 세금도 아닌데 강제로 내라하고, 기보에 대한 소유권 역시 기사의 권리는 깡그리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김연아 더러 세계대회보다 국내대회에 우선 참가해야 한다고 하면 말이 될까?
외국에서 번돈 중 일부를 빙상협회에서 강제로 뗀다고 한다면?
김연아와 상의도 없이 스케줄도 협회에서 다 정해버리면?
조훈현 9단 왈 이세돌이 1위이니까 1위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럼 1위가 한국기원을 다 먹여살려야 하나? 1위이고 돈많이 버니까, 조9단도 그리 했으니까 당연히 이세돌이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한국기원은 그동안 무얼 했나?
천재를 천재로 대우 안해주고 천재성을 키워주지 않는 척박한 우리 풍토가 문제다. 나이들었다고, 돈있다고, 지위가 높다고 후배들을 인정해주기 보다는 대접부터 받으려하는 그런 풍토가 참 천박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기원이 조폭집단은 아니지 않는가. 개인보다 한국기원 조직 어쩌고 들먹이는 유치함이란.
한국기원과 선배기사들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이세돌을 탓해야 마땅하다.
<蛇足>
이번에 이세돌 징계에 앞장선 조훈현 9단에게 너무 실망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데 왕년의 바둑천재는 당대의 바둑천재를 인정해 주기는 커녕 부엉이 바위로 쫓아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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