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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먹거리

효모가 살아있는 태안막걸리

희망연속 2009. 3. 13. 14:57

지요하 (sim-o) 기자
           


시골 출신 40·50대 연령층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술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에 다닌 경험, 그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초등학생 시절, 내게 '제트기'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아버지의 계략에 홀딱 속아서 수시로 주전자를 들고 정말 제트기처럼 나는 듯이 양조장을 다녀오곤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초등학교 5년 때쯤일 것으로 기억한다) 주전자 꼭지 밖으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뿌연 막걸리 맛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궁금증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 모금 살짝 맛을 보니, 약간 시큼하고 떫은 듯한 맛이 영 이상했다.

 

어른들이 왜 이런 것을 좋아하는지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의아심을 머금으면서도, 자꾸만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비닐 용기가 등장하기 훨씬 전, 양조장 직원이 큰 독에서 자루 달린 양철통으로 막걸리를 푹 퍼서 됫박에다 붓자마자 됫박 위로 솟구치는 술을 되받아 주전자에 넣어주곤 한 인심 후하던 시절이었다.

 

양이 많은 것만을 믿고, 사람 눈을 피해 살짝살짝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다 보니, 술 주전자를 받으신 아버지가 "오늘은 양조장 인심이 박해졌네"라는 말을 하시는 때도 있었다.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에 막걸리 맛을 알았다. 이미 어린 시절에, 맨 처음 접한 술이 막걸리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막걸리를 즐긴다.


평생 동안 혈당과 요산 관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지만, 몸 상태가 괜찮을 때는 가끔씩 막걸리를 즐기며 산다.

그러나 내가 마시는 막걸리는 한가지,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다.


플라스틱병에 '生 근흥막걸리'라는 이름과 '生 소원막걸리'라는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는, 다시 말해 '소원·근흥합동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전통민속주'다.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술이므로 나는 그냥 '태안 막걸리'로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 고장 막걸리라는 이유 하나로 내가 이 술을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한 애향심이 아닌, 질박한 자부심과 감사지정으로 이 술을 즐긴다.

막걸리 병에는 '태안'이라는 지명도, '3代 전통 가업'이라는 말도, '효모가 살아 있는 술'이라는 말도, '무방부제/무사카린'이라는 글자도 선명한데, 그 글자들 안에서 자신감이 생동하는 듯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맛이 썩 좋다. 군맛이며 잡맛이 전혀 없다. 방부제나 사카린 따위 첨가제가 일절 섞이지 않으니, 또 여기에 50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이 결합하니 맛이 좋지 않을 리 없다.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유통 기한은 고작 일주일이다. 타지역에서 오는 막걸리들은 방부제 덕에 유통 기간이 대개 2개월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 지방을 가든지 반드시 그 고장의 막걸리 맛을 본다. 나만큼 여러 고장의 막걸리를 고루 마셔본 사람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막걸리 애호가인 나는 우리 고장의 막걸리를 최고로 치며, 거기에서 큰 자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나는 외지 손님들을 맞을 때마다 꼭 우리 고장 막걸리를 자랑하며 대접한다. 바닷가 풍치 좋은 고장에서 사는 죄로 종종 외지 손님들을 꽤 많이 맞곤 한다. 

 

<태안신문> 2007. 6. 28 '태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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