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고싶은 곳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

희망연속 2025. 6. 3. 12:30

순천 송광사를 찾았습니다. 2박 3일의 남도여행 마지막날, 송광사 불일암과 천년불심길을 걷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상예보와는 달리 비가 많이 쏟아져 천년불심길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요.
 
송광사에 도착하자마자 불일암으로 향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약 35년 전에 불일암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도 법정 스님이 기거하고 계시다 해서 찾았는데 낮 시간 대에는 사람들이 몰려 오는 탓에 다른 곳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 오는 것을 피해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을 하셨죠.
 
당시의 불일암은 지금처럼 길이 닦여져 있지 않아서 산속 좁은 길을 한참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나는군요. 세끼 식사는 다른 스님이 배달한다고 했던 말을 들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열반하신 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정 스님과 불일암을 찾아 오는 손님들이 많아 송광사는 불일암 가는 길 약 1km를 정비하여 무소유길로 이름 붙였습니다.
 
불일암으로 향하기 전에 얼마 전 신문에 난 이경주 시인의 '송광사 불일암'이란 시조를 다시한번 읊어 보았습니다. 2025년 제28회 경남 시조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시조> 송광사 불일암(佛日庵) - 시인 이경주 
 
왜 절에 왔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매듭이 얽히고설킨 실타래 한 짐 지고
저무는 햇빛을 캐며
묵묵하게 나선 길
오르막길 같기만 한 무거운 인연들
쉽게 끝내버린 내리막길 인연들
다 잊고 새로워지려
나를 찾아 왔는데

 

여기서 한 달쯤은 지나가는 바람으로
그 바람 일 년쯤은 냇물로 흘려보내면
풍경의 청아한 소리로
맑아질 수 있을까
후박나무 잎이 가린 이끼로 덮은 납골
시간과 공간까지 소거된* 이곳에서
아직도 나를 못 버린
내 그림자 흔들거린다
 
*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법정 스님이 입적 전날에 남긴 법어.
 
 

 
불일암을 향한 새롭게 만든 포장도로. 약간 어색하기도 했지만 법정 스님을 생각하며 묵묵히 걸었습니다.
 
 

 
35년전에 왔을 때는 이 암자 1채 뿐이었습니다. 엄청 낡고 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님 열반 후에 송광사에서 보수를 한것 같고, 지금도 공사를 하느라 비닐로 씌워 놓았습니다. 
 
 

 
불일암 바로 옆에 법정 스님 납골을 모셔 놓은 곳.
 
 

 
불일암 바로 앞에도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고요.
 
 

 
 
 

 
불일암에서 나와 송광사로 향하는 내리막길.
 
 

 
이른바 무소유길.
 
스님은 평생을 무소유로 일관하시다 한줌의 재로 변해서 불일암 옆에 지내고 계시지만 납골을 모셔 놓은 곳, 새로 들어선 건물 등이 평소 법정 스님의 생각과는 약간 동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콘크리트 포장도로도 그렇고 웬지 어색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